판·검사 출신 전관예우 900만원으로 뿌리 뽑힐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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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최근 회사 돈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중소기업 고위 임원 A씨는 자신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 같은 낌새를 채고는 급히 전관 출신 변호사를 수소문했다.

 부하 직원들이 파악해 온 검찰 출신 변호사 중에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법조계의 거물도 들어 있었다. 그중 한 명을 낙점해 접촉했더니 해당 전관 변호사는 선임 조건으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고 한다. 착수금 5000만원에 성공보수 1억원, 선임계는 내지 않으며 검찰청에 나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변호사들의 탈세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른바 ‘전화 변론’ 조건이었다. 이 변호사를 선임한 A씨는 그 덕분인지 구속은 피했다.

 2011년 5월 17일 변호사법 31조와 117조 등 이른바 ‘전관예우금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 이듬해 1월 시행에 들어간 지 1년4개월이 지났으나 일부 전관 변호사에 대한 예우관행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다. 전관 변호사가 마지막으로 근무한 법원이나 검찰청의 사건을 1년간 수임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 등이 골자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전관예우금지책’ 중 수임사건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은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에 대한 처벌을 최대 900만원의 과태료 부과로 개정하는 방안을 진행 중이다.

 법무부는 28일 변호사법 117조 시행령 일부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벌금형이 아닌 과태료 부과만으로 ‘전화 변론’ 등의 관행을 척결하기에는 미진하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시행령 개정안은 법관, 검사, 장기 복무 군법무관 등 공무원직에 있다가 퇴직한 뒤 개업한 변호사는 퇴직 후 2년 동안 소속 지방변호사회에 사건 수임자료와 처리 결과를 신고해야 한다. 이를 어기는 전관 변호사에게는 위반 횟수에 따라 300만원(1회), 600만원(2회), 900만원(3회 이상)의 과태료를 물린다. 또 정식으로 사건 위임장을 제출하지 않은 상태에서 변호활동을 벌이거나 사건 수임 및 알선을 목적으로 경찰서·검찰청·법원 등을 출입하는 경우에도 횟수에 따라 같은 금액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변호사법 117조에 규정된 과태료에 관한 구체적 부과 기준을 마련해 법령 위반 행위를 억제하고 변호사 직역에 대한 국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재도 전관예우금지법에 따라 이를 어긴 변호사에겐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구체적인 과태료 액수는 대한변호사협회가 매달 한 번씩 자체 징계심사위원회를 열어 결정한다. 기준 없이 사안별로 결정된다. 그나마 위반사례 신고건수 자체가 적다. 대한변협 노영희 대변인은 “전관예우금지법이 시행된 지 1년이 넘었지만 신고사례가 많지 않다”며 “최근 사건 수임을 신고하지 않은 몇몇 변호사에게 300만~500만원의 과태료 부과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큰 사건은 전화 변론 한 건당 수억원의 수임료를 받는데 최대 900만원의 과태료 처분이 효과가 있겠느냐”고 의문을 표시했다.

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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