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타협 불가'를 선언한 구리의 101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준결승 1국>
○·박정환 9단 ?●·구리 9단

제9보(95~103)=구리 9단이 흑▲로 두자 박정환 9단은 백△로 응수했습니다. 그야말로 동문서답이지만 이 수순 속엔 오랜 기다림과 팽팽한 줄다리기가 숨어 있습니다. 백은 귀를 노리고 있었고 흑은 외면한 채 중앙 백을 위협했습니다. 그러자 백이 용서할 수 없다며 ‘응징’에 나선 것이죠. 바둑판은 돌연 승부처를 맞이했습니다.

 95로 막으면 96이 예정된 수순이죠. 흑이 ‘참고도1’처럼 삶을 방해하면 패가 되는 코스입니다. 그러나 이 패는 흑이 내키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A 자리, 백이 손 뺀 바로 그곳이 백의 팻감이 된다는 게 정말 싫습니다. 구리 9단, 역시 귀를 놔둔 채 97로 젖힙니다. 중앙을 다 잡겠다는 거죠. 백도 물론 한 발짝도 물러설 수 없습니다. 눈감고 98, 이 수로 귀의 흑이 통째 잡혔습니다.

 귀는 조금 이용하는 맛이 남아 있다지만 무척 큽니다. 줄잡아 35집쯤 됩니다. 구리 9단도 99로 씌워 백을 잡으러 갑니다. 피바람이 불어오는데 100의 절단은 뭘까요. ‘참고도2’ 흑1처럼 물러서면 백 2를 선수하는 정도로 중앙을 포기하겠다는 겁니다. 바둑은 끝없는 타협이죠. 천둥 번개가 치고 험악하기 짝이 없는 협박이 오고가도 그건 겉모습일 뿐 속에선 냉정하게 계산기가 돌아가고 있는 겁니다. 101로 타협 불가를 선언했기에 박정환은 102로 움직입니다. 통째 살리겠다는 선언이죠. 그러나 이 수가 어마어마한 불찰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밝혀졌습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 [바둑] 기사 더 보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