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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 3대 구속, 해경의 몸부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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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정기환
사회부문 기자

“이러다가 아이들까지 이상한 눈으로 볼까 걱정입니다.”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모강인 전 해경청장이 26일 법정구속된 데 대한 한 해경 간부의 넋두리다. 모 전 청장의 구속으로 해경은 수장(首長) 3대가 줄을 지어 비리 혐의로 구속되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다.

 구속된 세 사람 모두 해경 출신이 아닌 경찰 출신이다. 경찰에서 30여 년 근무하다 해경청장으로 옷을 바꿔 입은 경우였다. 그래서 해경 내부에선 ‘굴러온 돌이 조직에 흠집만 남기고 간다’는 원망이 나오고 있다. 해경에서는 경찰을 굳이 ‘육경(陸警)’이라 부른다. 1996년 경찰에서 독립했지만 청장 13명 중 11명이 경찰에서 낙하산을 타고 넘어왔다. 경찰청장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을 벌이다 탈락한 후보자를 해경청장으로 보내 배려하는 게 인사관행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임한 해경청장이 1년쯤 근무하다 제복을 벗는 것도 관행이다. 육군과 해군의 차이만큼이나 업무도 생소하기 때문에 경찰 출신 청장이 오면 스타보드(함정의 우현)나 포트(좌현) 등 기본 용어부터 설명하는 게 중요 업무다.

 여러 명의 경찰 출신 청장을 모신 해경 간부는 “그러니 조직에 대한 애착이나 자긍심이 떨어질 게 아니냐”고 말했다. 곧 옷을 벗을 참이니 외부의 유혹에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문제를 낙하산 인사에만 돌리는 게 해경의 불명예를 끊을 해결책은 아닐 것이다. 원인은 내부에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 새 해경 조직이 급팽창하면서 권한과 이권이 늘어난 점도 한 요인으로 꼽힌다. 지난해 국감에서는 일선 해경이 어선들로부터 농어·낙지 등을 받아 챙기는 구태 비리도 지적됐다.

 늘어난 권한의 크기와 무게에 맞게 제도적으로 비리를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감사기능도 강화해야 한다. 지금까지 해경에는 그런 장치가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달 취임한 신임 김석균 청장이 간부들로부터 청렴서약서를 받고 감사담당관을 외부에서 뽑기 위해 공모를 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지난해 5월 부임해 10개월간 근무한 뒤 지난달 퇴임한 이강덕 전 청장은 명절 선물을 돌려보내고 관련 사업자들을 멀리해 “너무 융통성이 없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지난달 퇴임 때는 10개월간의 월급을 고스란히 모은 7000만원을 해경장학회에 내놓기도 했다. 언젠가 사석에서 그는 “선배들 과오의 고리를 끊고 나가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한 해 예산 1조원에 1만 명의 경찰관을 거느린 해경의 환골탈태를 보고 싶다.

정기환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