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침략 역사 부정하는 아베·아소의 궤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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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어제 국회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죄한 무라아먀 담화와 관련한 질문에 “침략의 정의는 학회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며 “그건 국가와 국가의 관계에 있어 어느 쪽에서 보는가에 따라 다르다”고 대답했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가 일본의 시각에서는 침략이 아닐 수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침략의 역사를 부정하고 싶은 속내를 드러낸 궤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70%가 넘는 지지율에 취해 분별력을 잃은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일본의 종전 50주년 기념일인 1995년 8월 15일,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식민지 지배와 침략으로 아시아 제국의 여러분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줬다”며 “의심할 여지 없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한다”고 밝혔다. 이른바 무라야마 담화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를 둘러싼 반복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한·중·일이 21세기의 미래지향적 협력을 모색하게 된 배경에는 진일보한 무라야마의 역사인식이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아베는 무라야마 담화를 탈색시켜 역사의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겠다는 것이다.

 아베는 그제 국회에서 “아베 내각으로서 무라야마 담화를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건 아니다”라며 “전후 70년을 맞이하는 단계(2015년)에서 아시아를 향한 새로운 담화를 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역사인식의 후퇴 방침을 예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주변국의 상처를 헤아리지 않는 위험천만한 독주(獨走)다.

 아베 내각의 2인자인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의 인식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그는 지난 2월 25일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에 경축 특사로 와서 과거사와 관련해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박 대통령에게 늘어놓았다고 한다. 남북전쟁을 보는 시각이 지금도 미국 남부와 북부에서 큰 차이가 있는데 하물며 한·일 간에는 오죽하겠느냐며 장광설을 폈다는 것이다.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내전과 식민지 지배를 위한 침략을 동일선상에 놓고 바라보는 억지 논리다. 침략인지 아닌지는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는 아베의 인식과 궤를 같이하는 망언이다. 이런 퇴행적 역사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나란히 1, 2인자로 일본을 이끌고 있다는 것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일본 자신을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아베 내각의 각료 3명이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이어 일본의 여야 국회의원 168명이 어제 단체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마치 ‘대동아공영권의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분위기다. 일본 언론마저 이로 인한 국익 손상을 우려하고 있다. 한·중·일 협력도 어려워지는 분위기다.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만용으로 아베 내각은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