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오 마이 … 살라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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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젯 살라스가 21일(한국시간) 롯데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18번 홀에서 우승을 결정짓는 버디 퍼트를 놓치자 머리를 감싸쥐고 있다. 연장전을 치른 살라스는 결국 수잔 페테르센에게 우승을 내줬다. [호놀룰루 AP=뉴시스]

10번 홀(파4) 페어웨이에서 친 리젯 살라스(24·미국)의 샷이 홀에 빨려들어가면서 기적이 시작되는 듯했다. 살라스는 8번과 9번 홀에서 버디를 잡은 데 이어 10번 홀 이글로 세 홀에서 4타를 줄였다. 12번부터 16번 홀까지 5홀 연속 버디를 했다. 8번 홀까지 6타 차 선두로 여유를 부리던 수잔 페테르센(32·노르웨이)을 따라잡았다.

 그러나 살라스의 마지막 홀 2m 버디 퍼트가 홀에 들어갔다 나오고, 연장전 두 번째 샷이 물에 빠지면서 기적 같은 역전승은 사라졌다. 10언더파 62타를 친 살라스는 “오늘 샷 중 단 하나 나쁜 샷이 연장전에서 나왔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21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 인근의 코 올리나 골프장에서 끝난 LPGA 투어 롯데챔피언십에서 페테르센이 우승했다. 한국 선수들에게 번번이 역전승을 하고 하나·외환 챔피언십에서 2승을 한 그가 한국 회사가 만든 대회에서 또 우승해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대신 멕시코계 이민자들의 희망인 살라스의 첫 우승 꿈은 또다시 미뤄졌다. 살라스는 2주 전 나비스코 챔피언십에서 마지막 날 박인비(25·스릭슨)와 챔피언 조에서 경기하다 79타를 치고 눈물을 흘렸다.

 멕시코 이민자의 딸인 살라스는 거친 러프에서 자라난 선수다. 어릴 적 레슨비가 없어 아버지가 골프장의 기계를 고쳐주고 레슨 동냥을 했다. 살라스는 골프 덕분에 대학(USC)에 장학생으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가족 중 대학에 간 건 그가 처음이었다. 대학 시절 그의 감독은 “살라스에게 성공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었다”고 말했다. 2부 투어에서 뛸 때는 경비가 모자라 트럭을 고속도로 휴게소에 세워놓고 야영을 하기도 했다. 아버지는 적재함에서 자고, 그는 운전석에서 잤다.

 살라스는 마음이 천사다. 과거 골프 여제로 등극했던 로레나 오초아(32·멕시코)처럼 누구에게나 상냥하다. 자신의 과거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해서 기회가 없는 슬럼가의 소녀들에게 꿈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 인터뷰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얘기한다. 그래서 동료 선수들과 멕시코계를 비롯한 많은 팬이 그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의 꿈은 물속에 빠져버렸다. 살라스는 경기 후 “남들이 모두 너는 할 수 없다고 하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나는 LPGA 투어까지 왔고 우승 경쟁도 할 수 있었다”면서 “어려운 경험들이 나를 더욱 성장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페테르센은 “살라스가 곧 우승할 것”이라고 했다.

 아리야 주타누가른(18·태국)이 15언더파로 3위에 올랐고, 김인경(25·하나금융그룹)과 박인비가 13언더파 공동 4위를 차지했다. 박인비는 세계랭킹 1위를 지켰다. 최나연(26·SK텔레콤)이 11언더파 공동 6위, 무서운 10대 김효주(18·롯데)와 리디아 고(16·뉴질랜드)는 10언더파 공동 9위였다.

호놀룰루=성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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