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무대 뒤로 사라진 요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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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준결승 1국> ?
○·박정환 9단 ?●·구리 9단

제5보(47~60)=패는 성가시고 계산도 복잡하고 미해결에다 께름칙해서 참으로 골치 아픈 존재지요. 하수들이 아주 싫어하는데요, 고수들에게도 패는 ‘요물’입니다. 이 판에서도 요물다운 특징을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구리 9단은 47에 패를 쓰고 49로 따냅니다. 48은 꼭 받아야 하느냐고요? 그렇습니다. 흑에 이곳이 봉쇄되면 살기야 하겠지만 쌈지 뜬 모습이 무척 비참할 겁니다. 백에도 50 쪽에 팻감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런데 박정환 9단, 패를 하다 말고 52로 잇네요. 왜 더 이상 패를 하지 않을까요. 이게 바로 ‘요물’의 애매모호한 대목입니다.

 ‘참고도1’ 백1로 따내면 흑은 지체 없이 2로 끊을 것입니다. 백은 그 다음이 고민입니다. 패를 잇자니 너무 굴복 같군요. 기세상 도저히 이을 수는 없다고 합니다. 그럼 어떡합니까. A로 우지끈 끊는 것은 패가 너무 커져 그에 합당하는 팻감이 안 보인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해서 ‘참고도2’ 백1로 두어 귀를 잡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흑2가 선수라는 게 영 거슬려 잡아도 채산이 맞지 않습니다.

 박정환 9단도 이런 고민이 있어서 그냥 우하 쪽을 두어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쪽의 무게가 자꾸 커지면서 어느덧 패가 사소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바둑이란 참 묘한 거지요? 분명 패가 중요한 이슈였는데 어느 순간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60의 치중, 박정환 9단이 미묘한 타이밍에 응수를 묻고 있습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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