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뿐인 대통령직속위원회 폐지 "법률 탓" 21개 중 6곳 정비 그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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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5일 “일자리 대타협 등에 대해 신속히 논의가 진행되도록 노사정위원회 가동을 적극 검토해 달라”고 말했다. 수석비서관회의에서다. 청와대와 고용노동부는 곧장 논의에 착수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박 대통령이 말한 노사정위원회는 당초 정부가 폐지키로 공약한 곳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우리나라가 ‘위원회 공화국’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정부 산하에 각종 위원회가 많다”고 말했다. 위원회 관련 예산이 연간 3000억원에 달하는 걸 지적한 것이다. 이 발언은 위원회 개혁의 신호탄이었다. 당장 인수위는 1월 21일 “20개의 대통령 직속위원회 중 지역발전위를 제외하고 모두 폐지한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대통령이 말한 노사정위원회도 포함됐었다. 당시 대통령 직속위원회는 지난해 12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대통령 소속으로 승격되면서 21개에 달했다. 박근혜정부는 국민대통합위원회와 청년위원회를 신설하는 대신 기존의 위원회 20개를 폐지해 대통령 직속위원회를 21개에서 3개로 줄인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그러나 폐지 대상은 실무 검토를 거칠 때마다 줄어들었다. 당시 유민봉(현 국정기획수석) 인수위 총괄간사는 “폐지 대상 중 상당수가 법률에 의해 규정된 위원회”라며 한발 물러섰고, 결국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폐지 대상이 6개로 축소돼 통과됐다. 이에 대해 정부 관계자는 “처음부터 20개를 없앤다고 밝힌 게 실수였다”고 털어놨다. 법률에 근거해 상설 사무국을 두고 있는 위원회와 실질적인 역할이 있고 활동이 왕성한 위원회를 구분했어야 했는데 일괄 폐지 방침을 정하다 보니 혼선이 빚어졌다는 고백이다.

 폐지된 위원회는 국가경쟁력강화위·국가브랜드위·미래기획위·사회통합위·국가정보화전략위·국가인적자원위 등 6곳이다. 또 녹색성장위원회는 총리실 소속으로 격하됐다. 정부 관계자는 “이 가운데 국가인적자원위는 한번도 소집된 적 없었다”며 “개혁 과정에서 효율성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폐지된 위원회는 대부분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위원회 개혁이 ‘MB색깔 지우기’ 차원에서 추진됐다는 의심을 살 만하다.

 대통령 직속위원회 수도 크게 줄지 않았다. 21개 위원회 중 폐지된 6곳과 이전 1곳을 제외하고 2개 위원회(지방분권촉진위·지방행정체제개편추진위)가 통합을 앞두고 있다. 대신 위원회 2개(국민대통합위·청년위)가 신설된다. 이렇게 되면 대통령 직속위원회는 모두 15개가 된다. 정부 관계자는 “추후 관련 법령을 개정해 위원회를 계속 정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과거의 전례를 보면 위원회 수는 시간이 갈수록 증가해 왔다. 이명박정부 때도 대대적인 개혁을 공언하며 노무현 정권 말기 579개에 달하던 전체 정부위원회를 초기에 441개로 줄였지만, 정권 말기에는 위원회 수가 다시 505개로 늘어났다.

강태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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