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6000억 광고·물류 일감, 비계열사에 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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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현대자동차그룹이 6000억원 규모의 광고·물류 관련 내부 일감을 외부에 푼다. 중소기업에 바로 일을 맡기거나 경쟁 입찰을 통해서다. 재벌 그룹이 내부 일감을 대규모로 외부에 개방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그룹 전체 국내 광고 일감의 65%(1200억원)를 중소기업 등에 발주할 계획이라고 17일 밝혔다. 또 올해 물류 부문 국내 발주액의 45%인 4800억원 규모의 일감도 비계열사에 맡기기로 했다. 지금까지는 사실상 그룹 발주액 전체를 계열사인 이노션(광고)과 현대글로비스(물류)에 맡겨왔다.

 일감을 맡을 업체는 신설되는 경쟁 입찰 심사위원회에서 선정한다. 공정한 업체 선정을 위해 이 위원회에는 외부 전문가가 참여한다. 광고 부문에선 그룹·기업 광고, 국내 모터쇼 관련 이벤트, 제품 광고 제작 등을 외부에 개방한다.

해외 네트워크가 필요한 글로벌 브랜드 관리, 해외 스포츠 마케팅과 기업 비밀과 관련된 신차 관련 광고 등은 계속 이노션이 맡는다. 물류 부문에선 국내 공장 간 부품 수송, 공장 내 운송 등을 중소기업에 넘긴다. 전국적인 운송망이 있어야 하는 완성차·철강 운송은 글로비스가 계속 한다.

현대차 그룹 관계자는 “일감을 수주한 중소기업에 현대차그룹의 광고·물류 노하우를 이전할 것”이라며 “건설과 시스템 통합 분야 등에서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경쟁 입찰을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정부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대한 선제적 조치다. 현대차 그룹은 자동차 제조업의 특성상 계열사 간 부품 거래가 많다. 그룹 전체의 내부 거래 비중이 20.7%로 10대 그룹 중 SK에 이어 둘째다. 국회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총수 일가 지분이 30%가 넘는 계열사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를 집중 규제하려는 움직임도 영향을 미쳤다.

정몽구 회장 일가는 이노션 지분 100%, 글로비스 지분 43.4%를 보유하고 있다. 이노션(47.7%)과 현대글로비스(45.2%) 모두 전체 매출에서 그룹 내부 거래의 비중이 절반에 달할 정도로 높은 편이다. 광고·물류 부문이 일감 풀기의 첫 대상이 된 것은 자동차 제조를 위한 수직 계열화와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이 작용했다.

 일감이 줄어드는 이노션과 글로비스는 시장 경쟁력을 높여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이번에 외부로 풀리는 일감은 지난해 이노션 국내 매출의 32%, 글로비스 국내 매출의 40%에 해당한다. 이노션은 현대·기아차의 해외 시장 진출 확대에 맞춰 미국·영국 등 16개 지역에서 종합 마케팅 및 커뮤니케이션 업체로 성장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글로비스는 최근 원유·유연탄 수송 등으로 사업 범위를 넓혀 가는 중이다. 이날 글로비스 주가는 전날보다 6.07% 오른 16만6000원에 거래됐다. 류제현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단기 이익 감소가 있을 수 있지만 규제에 대한 위험이 줄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더 크다”며 “장기적으로는 해외 시장에서 얼마나 성장하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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