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 칼럼] 골수섬유증 진단과 치료의 새로운 도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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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구로병원
종양혈액내과 최철원 교수

이제 막 환갑을 넘긴 한 여성 환자는 하얀 면장갑을 끼고 진료실을 찾는다. 골수섬유증을 앓고 있는 환자는 하이드록시우레아라는 항암제 치료를 받다가 2011년 겨울 치료제 부작용으로 손과 발이 검게 변하고, 피부괴사가 나타났다. 항암제 복용을 중단하고 1년이 지나 손에는 새살이 돋으면서 피부색은 돌아왔지만 그 흔적이 남아 흉하게 변한 손을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 외출할 때면 늘 장갑을 찾게 된다고 했다.

해당 환자는 사진 찍는 것을 유난히 좋아해 잘 나온 사진을 보여주고는 했는데, 치료제 부작용으로 검게 변한 손과 발, 30kg이상 급격한 체중감소로 앙상하게 마른 몸, 그리고 복부를 가득 채운 비장의 무게 부담으로 걷는 것 조차 힘겨워 하는 최근의 모습에서 불과 2년 전 사진 속 환한 미소의 중년 여성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에서 상점을 운영할 만큼 증상이 잘 조절 되었으나, 이제 부축 없이는 거동이 어려워 매주 수혈을 받기 위한 병원 외출 외에는 하루 종일 침상에 누워서 지내고 있다.

이 환자가 앓고 있는 골수섬유증은 희귀 혈액암의 한 종류로, 혈액을 생성하는 골수가 단단하게 굳는 섬유화 과정을 거치면서 합병증으로 사망에까지 이르는 질환이다. 골수섬유증은 다른 골수증식종양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암으로 분류하지 않았지만, 결국 암으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 최근 WHO 개정안에서 혈액암으로 분류하였다.

최근까지 골수섬유증 진단 및 치료 지침에 대한 체계적인 논의가 미미하여 백혈병, 림프종 등 다른 혈액질환에 비해 발생률 및 유병률 통계자료 조차 아직은 충분치 않다. 국?내외적으로 골수섬유증이 자주 발병하는 연령대는 60대이나, 드물지만 30~40대에서 진단 되는 경우도 있다.

골수섬유증은 환자의 심신을 심각하게 쇠약하게 하는 여러 전신 증상을 동반한다. 병이 진행되는 동안 초기에는 빈혈로 인한 어지러움, 몸이 붓는 증상인 부종, 밤이면 땀을 많이 흘려 숙면에 방해가 되는 증상 등이 호전과 악화를 반복한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울 만큼 고통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본인 손으로 비장이 만져질 정도로 병이 많이 진행된 위중한 상태가 되고서야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경우도 많다.

평소 심한 어지러움이 계속되고 가벼운 타박상에도 쉽게 멍이 들거나, 갑작스럽게 코피를 쏟고 지혈이 잘 안 된다면 혈액검사를 통해 혈액수치를 확인 해 보는 것이 골수섬유증 조기진단에 도움이 된다. 이에 왼쪽 갈비뼈 밑으로 딱딱하고 불룩하게 비장이 만져진다면 주저 없이 병원을 찾아 골수 섬유화 진행 정도를 파악하고 적절한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골수섬유증의 치료는 증상 조절을 위한 보존적 요법과 완치를 전제로 한 조혈모세포이식술로 나눠진다. 평균 발병 연령대를 감안할 때 동종 조혈모세포 이식은 시도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치료와 연관된 합병증도 큰 시술이다. 현재 치료약제가 없는 상황에서 보존요법으로 하이드록시우레아를 사용하고 있으나 효과는 아주 제한적이며, 위 환자의 경우와 같이 심각한 이상반응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사용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다행히 최근 골수섬유증을 일으키는 JAK유전자 변이를 표적하여 작용하는 JAK억제제가 개발되어 곧 국내 시판이 예정되어 있어 골수섬유증 진단 및 치료 수준의 커다란 진전이 기대된다. 아직까지 골수가 단단하게 굳어지는 섬유화 진행을 완전히 중단시키고, 다시 정상적인 골수로 호전시키는 방안에 대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청구되는 골수섬유증을 포함한 전체 골수증식종양 환자수가 최근 4년간 증가추세에 있다고 한다. 이는 치료제 개발이 임상현장에서 진단과 환자치료의 동기부여가 됨을 반증하는 지표로 해석해 볼 수 있다.

JAK 유전자 변이 검사의 도입과 JAK억제제의 등장으로 골수섬유증 진단과 치료 과정이 좀 더 수월해진만큼, 과거 왜 병에 걸렸는지도 모른 채 방치되어 있거나 치료방법이 없어 병원을 멀리했던 환자들이 신약의 치료를 통해 삶의 질 개선과 생존기간 연장을 목표로 적극적인 치료에 임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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