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번기와 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보리를 베어 머리로 이어 날랐다. 오늘은 그것들을 한데 모아 탈곡하는 날이다. 1년 내내 하는 일이 아니니까 맘먹고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가시랭이를 둘러쓰고 보릿단을 들어 나를 일이 태산만 같다.
작년에는 오빠가 있었기에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는데 금년엔 하필이면 농번기에 군입 대 하셨다.
○…발동기가 돌아간다. 담배 한 대씩 피우며 쉬던 일꾼들의 손발이 바쁘게 움직인다.
○…따가운 태양, 온몸에 땀이 비오듯한다. 계속된 가뭄으로 바싹 마른 보리인지라 미처 보리 단을 나르기가 바쁘다. 『아주머니 빨리 들어 나르세요』 나는 귀가 찡함을 느꼈다. 『아주머니 어서요』 동생이 나를 보더니 씩 웃었다. 나는 아주머니란 소리를 계속 들어가며 탈곡을 끝마쳤다. 내가 생각해도 내 주제가 말이 아닌 성싶다. 긴치마, 삼베 적삼에 떨어진 수건….
시집도 안간 내가 아주머니로 보여도 풍성하게 쌓여진 보릿더미가 나의 마음을 흐뭇하게 해준다. <박진주·전남 화순군 도암면 정천리 566>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