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만나는 미·일·중 수뇌들|세 경축사절 「프로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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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금년 봄부터 이야기되어 오던 좌등 수상의 친선방한이 애초의 배려와는 달리 총선 전에 실현되지 못하고 박 대통령의 취임식 참석을 계기로 실현된 배후사정이야 말로 좌등 방한으로 상징되는 한·일 양국간의 관계를 단적으로 시사하고 있다.
한국 측이 애초에 총선 전에 그의 친선방한을 원한 이유는 「존슨」 「뤼프케」 등 외국원수의 방한에 곁들인 일본 수상의 방한으로 현 정부의 국제적 지위향상을 과시함으로써 현 정부의 위신을 높여 총선에 임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동안의 여러 사정으로 이번에 내한하게 된 것이다. 박·좌등 회담에서 예상되는 의제 중 가장문제가 되는 것은 일본과 북괴와의 관계인데, 같은 자유진영이지만 월남파병으로써 반공의 최전선에선 한국과 「평화외교」를 추진하는 일본과의 사이엔 적지 않은 견해차이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번 회담결과가 크게 주목된다.
1901년 생으로 전 수상 안신개씨의 실제인 그는 24년 동경대 법과를 나온 후 철도성에 들어가 47년 운수차관으로 승진, 48년 자유당 입당, 2차 길전 내각에 취임. 49년이래 연속 중의원에 당선, 이 후 자유당 간사장, 3, 4차 길전 내각에 입각, 길전파의 중진으로 활약했다.
54년 조선의혹에 연좌되었으나 견양법상의 지휘권 발동으로 모면, 그 후로도 연속 입각, 자민당 간사장을 거쳐 당내 최대파벌인 좌등파의 구축에 성공했다. 64년 총재공선에선 지전에 패했으나 지전의 와병은퇴로 그해 11월에 수상, 12월에 당총재로 올라섰다. 책략에 능한 정치가로 평가되고 있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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