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4명 준사범 시험 합격 "한자 배우면 다른 과목도 잘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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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온천동에 위치한 성균관학당은 한자 신동을 배출해내는 곳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이곳 초등수강생 중 한자 자격시험의 최고 난이도를 자랑하는 준사범 시험에 총 4명이 합격했다. 역대 한자 준사범 시험을 합격한 초등학생은 전국을 통틀어 5명뿐이다. 지난 10일 성균관학당을 찾아 지난해와 올해 준사범 자격증을 딴 수강생들과 이들을 지도한 송경옥 원장을 만나 그 비결을 알아봤다.

성균관학당 송격옥 원장과 한자 준사범 자격증, 준 1급 자격증을 획득한 아이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재미있는 수업, 아이들 집중력 높여

“조선시대에 태어나면 부모님으로부터 이름을 받죠 이때 이 명칭을 무엇이라고 할까?”

“’아명’이요.”

“그럼 15세에서 20세 사이에는 성인식인 ‘관례’를 진행하는데 이때는 또 무엇을 부여 받죠?”

“’관명’하고 ‘자’요.”

 “그럼 박식한 어르신에게는 원래의 이름 대신 무엇을 불렀을까?”

 “’호’를 불렀어요. 그리고 돌아가시면 ‘시호’를 붙이기도 해요.”

 이날 오후 4시30분. 성균관학당의 한 강의실에서는 송경옥 원장이 20여 명의 초등수강생들을 대상으로 한자 수업이 한창이다. 조선시대의 역사를 비롯해 중국의 춘추 전국시대 등의 옛이야기를 한문과 곁들인 흥미로운 수업방식에 아이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났다. 송 원장의 질문에도 막힘 없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특히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아이들 스스로 노트에 한자를 빼곡히 적으며 정리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교재만으로 가르치면 능률이 오르질 않아요. 그래서 신문을 적극 활용하죠. 시사용어를 한문으로 바꿔서 공부를 시키면 이해도 빠르고 더 재미있어해요.”

송 원장은 자신의 수업방식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실제로 아이들의 노트에는 하나같이 오려진 신문 기사와 사설 등이 붙여져 있었다. 1시간 30분 가량의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은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차분히 고개를 숙이며 송 원장에게 인사를 했다. 꽤 오랜 시간을 수업해서 피곤할 만 하지만 아이들은 오히려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최연소 준1급 자격증을 딴 한건희(8)군은 “수업이 재미있어서 끝나는 게 오히려 아쉽다”며 “선생님이 예절에 관해서도 알려주셔서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부분도 배울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준사범시험서 전국 최연소 합격자 영예도 누려

류재민(11)·이준해(12)·신동민(12)군은 모두 준사범 자격증을 취득한 한자 신동들이다. 류군과 신군은 올해 2월, 이군은 지난해 9월 각각 ‘대한 검정회 한자급수자격검정 준사범 자격증’을 취득했다. 준사범 과정은 최상위 등급인 ‘사범’과정의 바로 아래 단계다. 선정 한자 5000자를 모두 습득해야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또한 150문항 중 105문항 이상을 맞혀야 하는 엄격한 합격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들의 합격은 더욱 화제가 됐다.

이군의 경우 지난해 우수한 성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했다는 점도 놀라운 일이지만 전국 최연소 합격자라는 ‘영예’도 누려 주변인들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올해 2월에는 최연소 합격자가 바뀌었다. 류군이 만 10세의 나이로 당당히 합격해 단 5개월 만에 기록을 새로 쓴 것이다. 신군 역시 우수한 성적으로 자격증을 취득해 이들은 ‘한자 신동 3인방’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진다. 함께 한문을 배우고 그 과정도 비슷하다 보니 이들은 서로 절친하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누가 뭐랄 것도 없이 서로 알려주고 도와주며 우애를 쌓고 있다고 한다.

 “격몽요결·효경·사략(중국역사) 등을 배우다 보면 재미도 있지만 어렵기도 해요. 제가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형들에게 쉬는 시간에 물어보기도 하죠. 제가 아는 부분은 잘 설명해주기도 하구요. 한문은 암기보다는 이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류군은 7살 때부터 한문에 관심이 있었다고 한다. 유치원에 다닐 때 간단한 한문을 배웠는데 재미를 느껴 지금까지 배우고 있다고 한다. 한문을 배우니 국어와 영어의 성적향상도 자연스럽게 된다고 했다. 이군과 신군도 마찬가지. 한문을 배우면서부터 한글의 낱말 뜻을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획수가 많은 한자를 외우기 위해서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써야 하기 때문에 집중력도 향상됐다고 한다.

 “한자 공부는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까먹기 일쑤에요. 놀 땐 놀더라도 복습은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구의 강요도 없어요. 그냥 제 스스로가 하루라도 책을 안보면 불안해지거든요.”

 이군은 한자 실력을 높이긴 위해선 ‘이해’와 ‘반복’은 필수라고 힘줘 말한다. 이에 대해 신군과 류군 역시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어머니의 권유로 성균관 학당에 와 한자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배우다 보니 공부하는 습관도 달라지고 흥미도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집중력이 조금 부족한 아이들에게 한문을 배워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송 원장의 열정 ‘인재를 육성하다’

아이들이 한자의 재미를 느끼고 실력 향상까지 된 부분에 있어서는 송 원장의 탁월한 지도력이 큰 몫을 했다. 송 원장은 지난 5일 천안아산& 1면에 소개됐던 임용순(83)선생의 제자이기도 하다.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저 역시 배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여러 고적지를 견학하기도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한학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있죠”

송 원장이 한학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원래 자신의 아들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형편상 다른 부모처럼 사교육을 시킬 수 없었던 송 원장은 20여 년전 아들과 아들 친구들을 대상으로 서당을 차렸다. 아이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자 입 소문이 퍼져 수강생은 급증했다고 한다.

 “제게 배운 아이들이 집중력도 좋아지고 공부에 자연스럽게 흥미를 갖게 되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전 지금도 한학을 공부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더 훌륭하게 가르치기 위해선 저도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하니까요.”

 간혹 아이를 맡기면서 ‘한문이라는 과목을 배워서 어디에 도움이 될까’라고 걱정하는 부모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때 마다 송 원장은 한문을 배우면 다른 과목에도 분명 효과가 있다고 설득한다고 한다. 또한 ‘사자소학’등을 익히면서 부모에 대한 공경, 친구들과의 우애 등의 인성공부까지 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주장한다.

 “한문은 영어와 어순이 비슷해요. 국어 공부에도 낱말 풀이가 자연스럽게 되죠. 꼭 저희 학원이 아니더라도 자녀들에게 한학을 꼭 가르치시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현재 성균관학당에서는 초·중·고 반을 비롯해 성인반도 운영 중이다. 수강생도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성균관 학당에서 몇 명의 인재가 더 나올지 기대되는 이유다.

글·사진=조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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