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 중 핑 … 어지럼증 환자 5년 새 54%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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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도 눈치가 보이고, 가족들을 데리고 직접 차를 몰아 여행 한번 갈 수 없어요.”

 직장인 강모(38·서울시 영등포구)씨의 푸념이다. 강씨는 갑자기 심한 어지럼증이 찾아와 회사에서 조퇴를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면허가 있지만 운전대는 아예 잡을 생각조차 못한다. 운전 도중 어지럼증이 찾아와 사고로 이어질까 봐서다. 다니는 병원에서도 가급적 운전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다. 강씨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처음 증세가 나타난 건 3년 전이었다. 회식 다음날 출근 준비를 하던 강씨는 갑자기 눈앞의 세상이 시계방향으로 ‘핑핑’ 도는 걸 느꼈다. 너무 어지러워 구토까지 했다. 증세는 5분 정도 지속됐다. 그러곤 증세가 사라져 강씨는 과음한 탓이려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2~4개월에 한 번씩 같은 증세가 반복됐다. 병원에서는 그의 병을 이석증(耳石症)이라고 했다.

 귓속에 문제가 생겨 어지럼증으로 고생하는 환자가 크게 늘고 있다. 14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전정기능’ 장애로 병원을 찾은 환자가 55만여 명에서 85만여 명으로 54% 늘었다. 전정기능 장애는 전정기관의 이상으로 갑작스럽게 어지럼증을 느끼는 질환이다. 전정기관은 귀의 가장 안쪽 내이(內耳)에 있는 기관이다. 몸의 평형을 유지해 주는 역할을 한다.

 어지럼증을 느끼는 환자의 절반 이상이 전정기능 장애로 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정기능 장애의 특징은 시계방향이나 반대방향으로 도는 듯한 회전성 어지럼증이다. 심한 두통과 함께 구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이명·난청 등 청각 이상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한다.

전정기관 장애는 중이염 합병증이나 바이러스 등의 감염에 의한 내이염 등이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특별한 원인이 없는 경우도 많다. 전정기관 장애의 가장 대표적인 병인 이석증도 그렇다. 이석증은 미세한 칼슘 결정(이석)이 떨어져 달팽이관 내를 돌아다니는 병이다. 10년 넘게 이석증으로 고생해온 박모(44·서울 강남구)씨는 “이석증으로 언제 어지럼증이 찾아올지 몰라 일상 생활이 불안함의 연속”이라며 고통을 호소했다.

 전정기능 장애 환자는 장년층과 노년층에 특히 많았다. 노화와 관련이 깊다는 뜻이다. 지난해 환자 수를 보면 70대 이상에서 20만9504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이 50대(18만91명), 60대(16만4354명) 순이었다. 성별로 살펴보면 여성이 전체 환자의 69.2%를 차지해 남성(30.8%) 환자의 두 배를 넘었다. 중년 이상 여성은 폐경으로 호르몬 변화를 겪으면서 칼슘 대사에 이상이 생기는데, 이 경우 이석증 같은 전정기능 장애가 더 잘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원호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지난 5년간 환자 수가 늘어난 것은 어지럼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이석증은 물리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바로 호전되지만 전체 환자의 20~30%에선 재발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장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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