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2개월째 감소 …‘디레버리징’조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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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부채 증가세가 빠르게 둔화하고 있다. 가계부채 ‘디레버리징(deleveraging·부채 정리)’이 본격화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4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은행·저축은행·신협 등 예금 취급기관의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해 말보다 5조4000억원 감소한 654조4000억원을 기록했다. 1월(3조6000억원)에 이어 지난달에도 1조8000억원이 줄었다. 이 수치가 두 달 연속 감소한 것은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3년 10월 이후 처음이다.

 가계대출 증가율도 뚝 떨어졌다. 농협경제연구소에 따르면 2005~2011년 매년 7~11%대를 유지하던 전년 대비 가계대출 증가율은 지난해 1.1%로 꺾였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올 초 가계대출 감소는 주택금융공사의 모기지론 양도 등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있다”면서도 “가계대출 증가세는 지난해부터 확연히 둔화됐다”고 설명했다.

 이는 무엇보다 부동산 침체로 주택담보대출의 수요가 줄었기 때문이다. 과거 집값 상승기에는 은행 이자보다 더 많은 매매차익이 기대돼 돈 빌리는 게 ‘남는 장사’였다. 하지만 요즘은 대출이자 부담에 집값 하락까지 겹쳐 되레 이중으로 손해를 본다. 여기에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연착륙 대책,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를 맞아 그간 얻었던 빚을 정리하고 있다는 점 등도 원인으로 꼽힌다. 사실 미국·유럽 등에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디레버리징이 진행돼 온 점을 감안하면 한국의 가계부채 둔화는 다소 늦은 감이 있다.

 이 같은 디레버리징 조짐에 대해 전문가들은 나쁘지 않다는 평가다. 중장기적으로는 금융권의 잠재 위험을 줄이고, 가계도 미래 위험에 대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부동산 가격 급락과 맞물릴 경우다. 농협경제연구소는 올해 주택 가격이 현 수준을 유지하면 가계대출은 0.8% 감소하고, 연체율은 1.4%까지 상승(지난해 말 0.81%)할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주택 가격이 10% 하락할 경우 가계대출은 3.3% 줄고 연체율은 2.5%까지 급등할 수 있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부채상환 능력이 더 떨어져 가계부채 질의 악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송두한 금융연구실장은 “주택 가격 하락을 수반하는 가계 디레버리징이 진행된다면 관련 산업 전반에 걸친 건전성 문제로 확산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은행도 지난해 금융안정보고서에서 가계 디레버리징에 대해 “실물경제와 주택시장 부진으로 가계의 채무 상환 능력이 더 악화되면 소비 위축을 통한 경기 부진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손해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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