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26-목의 가시냐, 개죽음이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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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준결승 1국) ?
○·박정환 9단 ?●·구리 9단

제3보(23~34)=백△ 같은 전(田)자 행마는 A가 훤히 보여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바둑은 ‘연결’이 생명인데 이처럼 불확실한 연결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박정환 9단, 좌하 쪽에서 너무 약했다는 후회 때문인지 일전불사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흑도 당장 칼을 빼기는 좀 그렇습니다. ‘참고도’ 흑1로 가른 뒤의 변화가 답이 없거든요. 5로 밀어 백병전인데 흑7이 B의 포위를 노리면 백은 8로 귀의 생사를 위협합니다. 쌍방 치명적이지요. 삐끗하면 갑니다. 구리 9단은 손을 돌립니다. 백△ 같은 수는 ‘어려운 수’고 “모르면 손 빼라”는 게 바둑의 오랜 격언 아니겠습니까.

 23부터 시작합니다. 24 자리는 절대죠. 이런 곳은 얻어맞으면 안 되는 곳입니다. 그 다음 25까지 예정 코스인데 여기서 다시 박정환의 강수 26이 등장했습니다. 흑23과 25의 간격이 넓은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27과 29가 선수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 간격은 결코 넓다고 볼 수 없는 거지요. 그런데도 왜 한 수 던져 넣었을까요. 죽어도 고기 값은 한다는 겁니다. ‘목의 가시’ 같은 역할을 기대하는 겁니다.

 31로 밀어 26은 연결이 끊어졌습니다. 26이 흑의 수중에 그대로 들어간다면 개죽음이 됩니다. 그러나 ‘목의 가시’ 노릇을 한다면 소명을 다하는 겁니다. 과연 어느 쪽일까요. 고수들의 바둑은 매번 이런 싸움이지요. 서로 힘을 겨루지만 실제는 안목이랄까, 통찰력이랄까, 그런 걸 겨루는 거지요.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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