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성은 이제 그만 - 강봉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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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우리는 시대를 잘 만나 무책임한 깡패놀이 정권을 잡고 세상을 어지럽히다 망하는 꼴을 많이 구경했다. 그 덕에 자라면서 고생도 꽤 했다. 시대는 저마다 자기네가 제일 고생을 겪는다고 믿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발지전투」라는 영화를 보니 저 패망한 「나찌스」독일이 사람을 어떻게 미치게 했던가를 눈앞에 볼 수 있어 감개 무량했다. 극성을 부리다가 망하기는 군국 일본도 마찬가지. 지금 중공의 홍위댄가 하는 놀음 역시 멀리서 보기에도 어딘지 위태로운 느낌이 앞선다.
이런 무리들은 모두 요괴하게 선명한 깃발과 구호를 내걸고 설치며 사람을 들볶고 극성을 부렸다. 분에 넘친 치국구세의 망상에 들떠 동포의 자유와 인류의 평화와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한 것이다. 자기네 깃발 밑에 국민을 총동원해야만 직성이 풀렸기 때문이다. 극성만으로 세상일이 되나. 낙오하는 자유를 백성에게 거부한 오만함에 저들의 근본과오가 있다. 이점 우리네가 살고 있는 민주사회에는 「비국민」「반동」이라는 욕이 통하지 않아 고맙다.
우리도 잘 살 수 있는데 남만큼 못산다는 것을 갑자기 깨달은 요즈음 조국 근대화의 소리가 요란하다. 근대화된 선진을 보며 우리는 열심히 길을 넓히고 자동차를 사들이고 공장을 짓는다.
선거라는 정기 행사를 배워들인지도 이순이 된다. 그런데 선거에서도 우리넨 언제나 「룰」을 벗어난 서투른 극성이 따르는 것 같다. 동양 TV 「힛게임·쇼」의 선수들처럼 이기는데 바빠 전연 「룰」을 무시 하려든다.
원래 선거로 설치는 대의 정치제도는 여러 세기에 걸친 처참한 민권투쟁과 장구한 경험·연구의 결실이며 이해와 양보와 협조·설득과 관용과 공정의 정신을 그 기본 전제로 삼는다. 이것이 우리 몸에 완전 소화되자면 한 정권의 집정기간이나 몇 10년이나 아니 우리 한평생 안에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약이니 공약이니 하여 요란스레 대포와 맞대포를 쾅쾅 터뜨리는 바람에 여태까지 어느 한쪽이나마 믿어보자 하다가도 오히려 징그러워 자꾸만 서글퍼지는 우리 시민에게 이번 선거는 운동기간이 짧아서 우선 어지럽지 않아 좋았다. 민주사회의 책임 있는 시민으로서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모든 개인이 자기 처지와 자기 할 일을 먼저 생각하고 참된 자리의 자각에서 움직일 때 나라는 근대화된다. 자리를 모르는 자가 나라의 이득을 알리 있나? 근대화는 실로 인간의 정신에서 시작돼야겠다. <고대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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