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새판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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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5.3 대통령선거에서 박정희 후보가 승리하리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추측했던 일. 그러나 선거결과가 보여준 새로운 판도는 많은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었다. 박정희 후보·윤보선 후보의 득표차가 그렇고 박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그렇다.
주역은 같았지만 4년전 선거에 비해 5.3 선거는 여러가지면에서 그 성격을 달리한다.
63년 선거는 군사혁명과 군정에 대한 심판인 셈이었고 박정희 후보는 혁명을 주도한 군인이라는 인상을 씻기가 어려웠다.
또 63년 선거전은 이른바 사상논쟁의 회오리 바람속에 벌어졌고, 체미 예편장성이나 탈락혁명주체의 움직임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의 「희망」이 공화당 속에 기울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군정과는 아무 상관없는 공업화 정책이 심판된 것이며 시끄러운 사상논쟁이나 까다로운 대외관계도 따르지 않았다. 박 후보는 전번에 비해 퍽 유리한 여건에서 선거를 치렀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유력한 경쟁상대였던 신민당의 본질적 「한계」는 박후보의 대승을 더 쉽게 가져 온 것 같다. 신민당은 월남파병 문제와 「부익부 빈익빈」 논쟁 등 몇 가지 큰 「이슈」를 본격적으로 전개해 나가지 못한 것이다. 63년 선거에서 남북으로 갈리었던 표의 분계가 이번 선거에는 동서 분계로 나타나리라고 짐작되었었다.
기호·호남 지방에서 윤보선 후보가 박 후보를 제압하리라는 예상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었던 것. 기호지방의 정치의식 수준이 비교적 높고 보수적 경향을 지녔으며, 호남은 이른바「푸대접」 관념에 젖고 진보적 색채가 다소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서울 경기 전북에서 윤 후보가 박 후보를 약간 「리드」했으나 전체적으로 박 후보와 견줄 수 있도록 앞서지는 못했다. 신민당은 박 후보의 지지기반인 영남에서는 물론 자당의 지지기반인 기호와 호남에서도 패배한 셈이다.
공화당에서는 도시와 농촌의 차가 없는 지지율로 박 후보가 압승하리라고 장담했었다. 공화당이 「기대」했던 이 표의 평준화는 그대로 나타났다.
특히 야당으로만 기울던 서울에서 야당과의 표차를 10만표 이내로 압축시킨 것은 공화당의 큰 성공이라고 말할 수 있다.(63년 선거의 표차=약 43만)
유권자의 정치 의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도시 유권자의 「반항적」성향은 「비판적」으로, 농촌 유권자의 「순종」은 「기대동기」에 영향을 받게 끔 된 것일까.
당초 공화당이 도시 지역에서 타성적인 열세를 만회하고 농촌 지역에서 기대보다 적은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있었으나 박 후보는 전반적으로 시종 윤 후보를 「리드」했다. 이것은 공화당의 조직력에 힘입은 바 크겠지만 정치적 안정과 경제건설로 집약되는 박 후보의 시정기조가 많은 기대를 국민에게 준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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