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반 표 대결 벌일 때 기존 대주주 돕는 주주를 ‘백기사’라고 불러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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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영화나 드라마에선 주주총회의 표 대결이 긴박하게 그려지곤 합니다. 방영 중인 TV 드라마 ‘돈의 화신’에선 저축은행 회장 자리를 둘러싸고 회장이 되려는 두 세력이 주요 주주를 회유하는 과정을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선 주총에서 큰 갈등이 벌어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회사의 주인(주요 주주)이 분명한 경우가 많고, 대부분 주식을 많이 갖고 있는 주요 주주의 뜻대로 주총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죠.

 그래서 표 대결이 벌어질 때면 더 관심이 집중됩니다. 올해 주총 가운데는 지난달 22일 열린 현대상선 주총이 그랬습니다.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현대상선은 우선주 발행을 통해 자금을 더 쉽게 마련할 수 있도록 하는 안건을 주총에 올렸습니다. 현대상선의 1대 주주인 현대엘리베이터(지분율 23.8%)와 관련 회사들은 이 안건을 찬성했지만, 이 회사의 2대 주주인 현대중공업(지분율 15.2%)은 이에 반대하면서 표 대결을 했습니다. 표결 결과는 찬성 67.35%, 기권·반대·무효 32.65%였습니다. 이 회사는 2년 전에도 비슷한 안건으로 표 대결을 했고, 그때는 현대중공업 쪽이 이겼습니다. 당시 현대중공업 편을 들었던 주요 주주들은 이번 주총에선 기권 등의 방법을 통해 간접적으로 현대엘리베이터 편을 들었습니다.

 특정 세력이 회사를 장악하기 위해 주총에서 공격적인 표 대결을 하기도 합니다. 기존 최대주주나 경영진의 반대를 무릅쓰고 기업을 장악하려는 것이지요. 적대적 인수합병(M&A)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럴 때 기존 최대주주 등은 우호적인 세력을 최대한 모아서 경영권 방어에 나섭니다. 기존 최대주주를 돕는 우호 주주를 ‘백기사(white knight)’라고 부릅니다. 2003년 외국계 자본인 소버린이 SK 경영권을 인수하려고 하자 국내 은행들이 SK의 백기사 역할을 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소액주주의 요구에 의해 표 대결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요 주주에 밀려 들러리 역할을 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서 소액주주가 문제가 있는 경영진의 교체 등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올해는 휴스틸이라는 회사에서 소액주주들이 더 많은 배당을 해줄 것을 요구하며 주요 주주와 표 대결을 벌였으나 뜻을 관철시키진 못했습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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