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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기술 익히는 검은 피부 성심원 배광 농예교 나대선 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서울 한남동 「버스」 종점에서 나룻배로 한강을 건너 약 1킬로 떨어져있는 고아원 성심원 (원장 이철우 신부) 넓은 밭에는 나대선 (15·일명 「카빈」 ) 군등 13명의 흑인 혼혈아가 흙 속에서 자기가 설 땅을 찾으려고 농업기술을 익히고 있다. 피부는 검지만 외마디 영어조차 할 줄 모르는 이 흑인 고아들은 1백20명의 한국 고아들에게서 「검둥이」 라고 불려도 자기들의 애칭으로만 여길 정도로 벌써 체념의 상흔에 익숙해있다.
○…5세부터 15세까지의 이들 흑인고아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나대선 군은 비록 피부가 검고 고수머리이며 입술이 유난히 두껍지만 동생뻘 되는 다른 흑인고아들의 「리더」가 되어 한국고아들과의 인화에 신경을 쓰며 자기들도 한국인임을 일깨워주기 위해 온갖 「제스처」를 다 부리고 있다.
핏덩어리일 때 이미 어머니로부터 버림받은 나 군은 이곳저곳 고아원을 전전하다 마지막 이른곳이 이곳 성심원-.
지금은 성심원 부설 배광 농예기술학교 (중학과정) 에 다니며 원예와 축산, 그리고 농사짓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나 군은 두툼한 입을 열어 『앞으로 신학교에 들어가 신부가 되는 것이 소원』 이라면서 뭇 혼혈아의 슬픔을 자신의 가슴에 심은 채 날이 갈수록 사회문제가 되어 가는 혼혈아들을 위해 평생을 바칠 결심이라고 담담히 말하고 있다.
○…이 검은 고아들의 큰 소망은 양부모를 가지는 것. 그러나 흑인 고아들이 양부모의 인연을 맺기란 어려운 일. 그래서 이들은 더욱 슬프다.
이 성심원에도 가끔 외국인들이 다녀가기도 하는데 이들 외국인조차 흑인2세는 본체만체 한다고…
심지어 이곳을 찾는 흑인들까지도 흑인 2세들에게는 냉담하다는 것이다. 작년여름 전국 국민하교 축구대회가 열렸을 때 나 군이 서울지구대표로 뽑히자 심판이 나 군의 피부색을 보고 실격을 선언, 나 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면서 퇴장한 뒤부터 명랑했던 성격이 차츰 침울해지기 시작했다고 성심원 직원들은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흑인2세들은 비록 피부색은 다르지만 한국 땅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자활의 길을 찾기 위해 오늘도 검은흙을 매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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