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발되지 말아야 할 영구결번 해프닝

중앙일보

입력

지난 1월 23일 기아 타이거즈는 각 언론사에게 타이거즈의 영구결번인 유니폼 넘버 18번을 신인인 김진우에게 주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영구결번의 당사자인 선동열 KBO(한국야구위원회) 홍보위원도 흔쾌히 수락하면서 김진우가 자신의 뒤를 이어 한국을 대표하는 간판투수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했었다고 덧붙였다.

그런데 28일 기아구단은 다시 각 언론사에 ‘해태 타이거즈 시절 선동열 선수의 영구결번된 사실을 존중하는 의미에서 김진우 선수에게 새로운 등번호를 주기로 결정했다’고 다시 보도자료를 돌렸다.
여기에 ‘이번 일로 팬들과 선동열 홍보위원에게 본의 아니게 걱정을 끼쳐 드려 유감’이라는 사과를 뜻을 밝혔다.

이로서 기아구단의 ‘영구결번 해프닝’은 5일만에 끝났다. 그러나 이번 일은 새로운 유니폼 넘버를 가지게 된 김진우는 물론이고 선동열 홍보위원에게도 씁쓰레한 마음을 가지게 만들었다.

아무리 한국프로야구의 역사가 짧고 그 권위가 미국이나 일본 보다 상대적으로 떨어진다고 하나 기아구단 프런트의 야구에 대한 안일한 자세가 문제다. 구단에서는 유니폼 넘버 18번이 영구결번이었는 지 몰랐다고 변명하였으나 이는 믿기 어렵다. 기아구단 프런트 대부분이 해태구단 출신임을 감안하면 몰랐기 보다는 영구결번의 의의에 대해 과소평가했다는 게 옳을 것이다.
또한 지난 11월에도 이미 기아구단에서 영구결번 문제가 불거져 나와 없었던 일로 했던 전례가 있었다.

아다시피 영구결번의 효시는 미국 메이저리그다. 2,130경기 연속 출장이라는 대기록를 남긴 뉴욕 양키즈 소속이었던 '철인' 루 게릭을 기리기 위해 양키즈구단이 그의 유니폼 넘버 4번을 영구결번시킨 이래 2,632경기 연속 출장으로 루 게릭의 기록을 넘어선 칼 립켄 주니어(전 볼티모어 오리올즈)의 은퇴 후 올리올즈 구단이 그의 번호 8번을 영구결번으로 결정하기 까지 모두 140명이 영구결번 명단에 올라가 있다.
 
일본에서는 1947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이었던 구로사와와 사와무라가 그 효시이며 지금까지 14명이 영예로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OB 베어즈 소속이었던 김영신이 1986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OB 구단에서 그의 유니폼 넘버 54번을 영구결번 시킨 것이 효시이나, 팀에 뛰어난 공적을 남긴 선수를 기리기 위해 구단에서 영구결번 시킨 것은 당시 OB 베어즈 소속이었던 윤동균 현 한화 이글즈 코치가 1989년 8월17일 은퇴경기를 치르면서가 처음이다. 그 이후 1996년 선동열 홍보위원이, 1999년에는 현 LG 트윈스 김용수 코치의 41번이 영구결번 되어 있다.

영구결번은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위대한 선수들의 일생을 담는 역사란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뛰어난 기록을 남기거나 구단 혹은 야구계에 많은 공헌을 한 선수를 기리기 위해 그 선수 유니폼 넘버를 다른 선수가 달지 못하도록 하는 게 영구결번 제도다. 그렇기에 그 선수 개인에게는 최고의 영광이자 명예이며 구단에게는 역사와 전통을 나타내 주는 본보기다.

야구계에 몸담는 그 순간부터 야구 그 자체를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선수 뿐만 아니라 구단 프런트 모두가 한국프로야구의 역사와 전통을 쌓아가는 주역으로서의 사명감을 가져야 하겠다.

신종학 - 프로야구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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