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 예방 연극 만든 선생님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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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속초·고성·양양 지역 교사 연극동아리 ‘연어’ 소속 교사와 설악여중 학생들이 23일 연극 시연을 마친 후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 강원도교육청]

23일 속초시 설악여중 세미나실은 해병대 리더십캠프장으로 변했다. 캠프장에는 교사와 설악여중 학생회 및 연극반 학생 등 30명이 입소했다. 이들 가운데 현진이도 끼어 있었다. 현진이는 다른 학생들의 휴대전화나 옷을 뺏고 때려 퇴학 직전까지 몰린 학생이다. 캠프를 무사히 마치면 학교에 계속 다닐 수 있도록 마지막 기회를 주자는 담임 교사의 호소로 참가하게 됐다. 그렇지만 현진이는 규칙을 어기고 휴대전화를 사용해 단체기합을 받게 만든 재섭이와 시비 끝에 또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현진이는 해병대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징계위원은 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이 맡았다. 학생들은 “재섭이는 왜 규칙을 어기고 휴대전화를 사용했나요” “현진이는 왜 재섭이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았나요” 등 각자가 가해자와 피해자 입장에서 질문했다. 또 싸움을 말리지 않은 방관자 입장의 질문도 나왔다.

 연극 ‘해병대 캠프 입소를 환영합니다’의 시연회 장면이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학생 참여형 교육연극이다. 이 연극은 속초·고성·양양 지역 교사 연극동아리 ‘연어(연극으로 어울리는 사람들)’가 기획했다. 학교폭력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된 가운데 학생들이 직접 배우가 돼 학교폭력 피해자의 아픔과 가해자 또는 방관자의 잘못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이날 학생들은 배우로, 때로는 관객으로 연극에 참여하면서 ‘폭력은 나쁘다’는 일차원적 반응을 넘어 나름대로 현실적인 해결책을 생각할 수 있었다. 김서연(3년)양은 “이전 학교폭력 예방 교육은 뻔한 이야기가 많았다”며 “연극에 즐겁게 몰입하면서 피해자의 아픔도 이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어의 원영근(39· 양양 회룡초) 회장은 “학교폭력이 자신, 또는 주변 친구에게 발생했을 때 어떻게 상황을 이해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직접 느끼고 고민할 수 있도록 하려고 기획했다”고 말했다. 연어는 4월부터 학교의 신청을 받아 교육 현장을 순회하며 공연할 계획이다. 

이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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