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질 중시하는 일본인들이 존경스럽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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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9년 프랑스 자동차업체 르노가 고질적인 적자문제를 안고 있던 니산자동차를 인수하면서, 기업구조조정 전문가인 브라질태생의 카를로스 곤(47) 에게 경영권을 맡겼다. 곤 사장은 전례 없는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해 부채로 허덕이는 업계 대표기업을 흑자 기업으로 바꿔놓았다. 그와 함께, 일본 내에서는 카를로스 곤 사장의 패션스타일을 따라하는 유행까지 생겼다. 많은 직장인들이 그의 패션과 안경 스타일을 따르고 있다. 곤 사장은 최근 두 차례에 걸쳐 타임지 팀 라리머 도쿄지사장과 인터뷰를 가졌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타임: 일본에 대해 의외였던 점은?

곤: 일본에 대해 막연하지만 긍정적인 이미지만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선입견이 없는 상태에서 출발하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본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백지상태에서 일을 시작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일본경제와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질문했던 일이다. 두 번째로는 일본의 저변에 깔려있는 "가만(인내)"이라고 하는 일본인들 특유의 강인함과 속성에 상당히 놀랐다. 바로 이것은 일본의 현재와 미래를 뒷받침 해주는 힘이다.

타임: 일본업체들의 경영방식과 관련해, 가장 변화시키기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곤: 소니나 혼다 같은 다른 업체들은 상황이 다르므로 니산자동차에만 국한시킨다면, 비상사태라는 인식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비단 신속한 의사결정에 관한 것만은 아니다. 재빨리 행동에 옮기고 또 그 결과를 얻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 점을 변화시키기가 가장 힘들었다.

타임: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곤: 1999년대 초 니산자동차의 부채규모는 무려 220억달러(약 )나 되었다. 세계 자동차시장이 불황을 맞고 있는 데다 8년 동안이나 적자를 면치 못하는 상태였다. 단 한 해만 흑자로 돌아섰고, 그 규모도 미미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회사 내에서 위기의식이나 불안감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따라서 몇 년 전부터 변화의 필요성이 절실했지만, 이를 시도한 사람을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임 후 나의 첫 임무는 직원들 사이에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사실 니산자동차에 무슨 거창한 대변혁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일을 진행시켰고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함으로써 이제 책임감 있는 일꾼들이 되었다.

타임: 일본인들은 변화를 싫어한다는데...

곤: 일본인들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아주 많지만, 논쟁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이들이 실용주의적이라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매우 현실적이다. 니산자동차의 실정은 여실히 드러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조치가 취해져야 했다.

타임: 니산자동차에 있으면서 외국인 경영자로서 문화적 차이를 어떻게 극복했는가?

곤: 타국에서 지내려면 각오를 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일본에 대한 관심도 높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는 의지도 강했다. 그리고 일본과 일본인들에 대한 존경심도 갖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일본에 대한 편견도 버리고 왔다. 그러나 어떤 사전 계획을 갖고 오진 않았다. 이 외의 인위적인 적응노력이 따로 필요한가? 그렇지 않다. 나는 지금까지 확실한 방법대로 살아왔다. 그리고 그걸 좋아한다. 일본어를 배우는 이유도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무엇보다 내가 원하기 때문이다. 그 나라의 언어를 이해하지 않은 채 그 속에서 생활한다는 건 아주 비참한 일이다. 여기서하고 있는 일은 내가 원해서 하는 것들이다.

타임: 지난 1980년대 너나할 것 없이 일본식 경영기법을 모방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 되었다. 그 이유는?

곤: 20년 전 미국은 다양한 산업에 일본의 성공적인 경영기법을 도입했다. 커다란 성과가 있었다. 그래서 미국 자동차 산업도 회복했다. 상황이 변화된 이유는 미국인들은 자신들을 재정비하고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어디서 오든 상관없다는 태도 때문이다.

타임: 니산자동차를 위시한 일본 기업들의 문제점은 무엇이었나?

곤: 니산자동차는 성과위주체제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했다. 일본업체들은 성공하려면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지를 잊었고, 또 한편으로는 교차직무를 경시하는 분위기도 한몫 했다. 엔지니어, 디자이너, 마케팅 담당자들은 각자 자신들이 맡은 일에만 열중했을 뿐, 상호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이런 점이 가장 큰 문제였다.

타임: 과거에는 일본의 자이바쯔(kereitsu system: 일본식 재벌체제)가 기막힌 사업모델로 여겨졌다. 지금은 아닌데, 그 이유는?

곤: 자이바쯔는 성과위주의 경영체제하에서는 매우 효과적인 시스템이다. 그러나 니산에서는 더 이상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타임: 일본과 미국에서 모두 일해 보았는데, 어느 나라 국민들이 더 성실한가?

곤: 일본과 미국뿐 아니라 유럽, 브라질 등 많은 나라에서 일해보았지만, 그 중 미국과 일본 국민들이 가장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타임: 상당히 정치적인 발언 같다.

곤: 굳이 답변을 한다면, 미묘한 차이점은 존재한다. 최전방에서 뛰고 있는 일본 직원들이 보여준 "가만(인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회사에 대해 매우 헌신적이고 성실하다. 전세계 최상의 일꾼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회사간부들을 비교해 보면, 미국 간부들이 훨씬 열심히 일한다. 물론, 과거에 성과에 따른 개인적인 보상이 더 많았기 때문이기는 하다. 그러니까 일본 사원들과 미국 간부들에게 점수를 주겠다.

타임:미국인들에 비해 일본인들이 애사심이 더 강하다는데, 사실인가?

곤: 그렇다. 일본 직원들은 회사에 대단히 충성스럽고, 개개인의 이익보다는 회사의 이익에 더 무게를 둔다. 그렇다고 미국 직원들이 애사심이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회사의 이익만큼 직원 개인의 이익도 중요하다고 본다.

타임: 일본의 합의방식의 경영스타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긍정적으로 보는가 아니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는가?

곤: 상당히 좋다고 본다. 하지만 적극적인 경영법과 수동적인 경영법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수동적인 경영법은 치명적일 수 있다. 신속성이 떨어지고, 모든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는 생각과는 다르게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경우가 더 많다. 내 생각으로 만장일치를 얻어낼 필요는 없다. 85% 정도도 괜찮다. 르노에서는 직원들의 동의를 충분히 얻었다고 생각하면, 바로 일을 추진해 나한다. 여기 니산자동차는 소극적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현재 이를 바꾸는 작업이 진행중이다.

타임: 니산자동차를 맡고 있는데, 다른 일본업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고이즈미 일본 총리에게 조언 한 마디 한다면?

곤: 한 나라의 총리에게 조언을 할 만한 자격이 없다. 한 회사의 경영자일 뿐이지, 한 나라 전체에 대해 왈가왈부할 만한 사람이 못된다

타임: 그래도 한 마디 한다면?

곤: 정 그렇다면... 사람들의 말을 경청해야 하는데, 자신에게 보고하는 사람들에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직 내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가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파악해야 한다. 두 번째로, 신속하게 행동해야 한다. 사태를 진단을 하고 나면, 곧바로 행동에 옮겨야 한다. 세 번째,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의사결정권을 주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직원들과 의사소통을 많이 해야 한다.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일 뿐 아니라, 그 결과에 대해서도 의사전달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보상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끝으로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해야 한다.

타임: 총리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곤: 이건 총리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문제를 안고 있는 한 일본 우량기업을 운영하면서 내린 결론일 뿐이다.

타임: 지금까지 일본 또는 니산의 문제점에 대해서만 이야기했지만, 일본이 가진 장점과 본국으로 가지고 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곤: 경영전략, 행동계획, 그리고 그 계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간결한 방식이 맘에 든다. 바로 이것이 일본의 기본 강점이다. 내가 높이 평가하는 또 다른 점은 전통적인 섬세함과 질(質)을 중시하는 태도이다.

타임: 일본업체들은 이제 세계무대에서의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면 경쟁력을 갖춰 다시 설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곤: 다시 경쟁할 수 있느냐고? 물론이다. 세계 최고의 기량을 갖춘 일본업체들은 막강한 경쟁상대가 될 것이다.

타임: 일본 직장인들의 특징은 무엇인가?

곤: 애사심이 강하고 규율이 잡혀있으며, 확고한 리더십을 필요로 하고 있다.

타임: 일본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많은 일본인들이 당신의 패션스타일까지 따라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곤: 내 패션스타일에 대해 여러 번 질문을 받은 적이 있긴 하지만, 새삼스러운 바는 아니다. 배우는 걸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노하우를 높이 평가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열심히 배운다. 현재 니산자동차에서 시도하고 있는 일과 그 방법에 대해 일본인들의 관심은 뜨겁다.

타임: 최근 일본의 경제상황은 매우 어둡다. 많이 의기소침해 있거나 불안해 하고 있는 것 같은가?

곤:1999년에는 미래에 대한 불안과 선입견이 높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니산자동차만 하더라도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직원들이 자신감을 되찾고 있다.

타임: 실리콘밸리에서도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는데...

곤: 그렇다. 하지만 실리콘밸리의 경우 기껏해야 석 달이지만, 일본업체들은 장기간 고전해 왔다.

Tim Larimer (Time) / 안선주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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