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대란… 주말 정보 암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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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사이버 테러-.”

인터넷 전면 마비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주말,인터넷 이용자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경악했다.

e-메일과 메신저,각종 예약서비스 등 인터넷에 기반한 대부분의 서비스들도 먹통이 돼 혼란과 불편은 전국 곳곳 생활 구석구석에서 이어졌다.

설 대목에 심각한 영업피해를 입은 인터넷 쇼핑몰이나 PC방 체인점 등은 인터넷 통신업체에 손해 배상을 청구할 움직임이어서 파장은 계속될 참이다.

◇네티즌들 분노="세상에서 단절된 것 같다" "물이나 전기가 안 나오는 것보다 더 답답했다" "9.11테러보다 더 충격적이다." 네티즌들은 거의 패닉 상태에 빠졌다.

처음엔 개별 컴퓨터의 고장이거나 특정 통신망의 장애로 생각했던 네티즌들은 바이러스 백신으로 상황을 검색하고 하드디스크를 새롭게 포맷하는 소동을 벌였다.

그러나 TV.전화 등을 통해 전국적인 인터넷 불통사태임이 알려지면서 "대한민국이 '방법'(공격을 받아 마비됐다는 뜻의 사이버 속어)당했다"며 충격에 휩싸였다.

25일 오후 늦게부터 사태가 조금씩 진정되고 사고 원인이 웜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반응은 분노로 바뀌었다.

한 네티즌은 "고속 경제성장의 허울이 성수대교.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드러났 듯 이번 사고는 IT 강국이라고 우쭐대던 우리의 참모습을 보여줬다"고 지적했다.

특히 웜바이러스에 의한 피해가 미국.일본.중국.태국 등에서도 생겼지만 우리나라만 유독 국가 전체 인터넷망이 일순간에 무너졌다며 당국에 대한 성토와 자성의 목소리를 높였다.

한 네티즌은 "이번 웜 공격에서 악용된 SQL 서버 2000의 취약점은 이미 드러난 것이고, 제작사인 마이크로소프트(MS)가 배포한 패치만 업데이트해 놓았어도 됐을 일"이라며 "관련자들은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일본 유학생은 "한국의 인터넷은 대단한 자랑거리였고, 부러움도 많이 샀는데 이번 사건으로 망신살이 뻗쳤다"고 인터넷에 글을 띄웠다.

◇쇼핑몰.PC방 큰 타격=인터파크.삼성몰.CJ몰 등 전국의 2천6백여 인터넷 쇼핑몰 업체들은 설 연휴를 앞둔 대목이어서 피해가 특히 컸다.

인터파크 관계자는 26일 "물건을 구입하지 못했다는 고객, 예약 취소를 못했다는 고객, 결제 과정 중 접속이 끊겼다는 고객 등 항의전화가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매출이 평소 토요일의 3분의 1로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I사 관계자는 "설 특수기간이어서 매시간 평균 1만여건의 주문이 들어오는데, 이번 사고로 엄청난 손해를 봤다"며 "손해액이 산정되는 대로 통신회사에 배상 청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PC방들의 타격도 컸다. 서울 압구정동의 한 PC방 주인은 "오후 3시쯤 이상이 생겨 하나로통신에 전화했더니 '전체적인 문제니 잠시 기다려라'고 하더라"며 "온라인 게임을 하던 손님 30여명에게 돈을 받지 못한 건 물론이고 고객이 가장 많은 토요일 오후를 완전히 잡쳤다"고 불평했다.

사이버리아.인터칸 등 PC방 체인점들은 피해 규모가 나오는 대로 KT 등 관련업체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예약.수납.민원 올스톱=여행사.철도청.항공사 등 인터넷으로 표를 예매.결제하는 업체들도 업무 중단 소동을 겪었다. 대한항공.아시아나 등 항공사들은 인터넷 예약이 중단되자 전화와 팩스로 예매를 하는 통에 문의전화가 불이 났다.

티켓 예매업체인 '티켓파크'의 상담원 孫모(23)씨는 "공연이나 뮤지컬.영화 티켓을 예약한 고객들은 예약번호를 인터넷으로 확인해야 하고, 예매한 티켓을 취소할 때는 꼭 인터넷을 통해서만 해야 하는데 어떡하면 좋으냐"고 발을 굴렀다.

신촌 세브란스병원 등에서는 인터넷으로 확인하던 건강보험 처리가 안됐으며, 신용카드 결제도 안돼 치료비를 현금으로 받느라 창구 혼란이 심했다.

관공서가 문을 닫는 토요일 오후여서 정부기관의 혼란은 덜했다. 하지만 각 정부부처의 사이트로 연결되는 전자정부 홈페이지(www.egov.go.kr)가 접속불능 상태에 빠져 4천여종의 각종 민원 안내와 3백93종의 민원 신청 서비스가 중단됐다.

◇"보안 중요성 뼈저린 경험"=컴퓨터 보안 전문가들은 IT 강국을 자처해온 국내 컴퓨터 분야 종사자들의 보안의식을 탓했다.

서울경찰청 사이버 수사대장 강승수(姜承秀)경정은 "우리나라가 인터넷 강국이라는 것은 인터넷 서버 숫자가 많고 가입자가 많다는 것일 뿐 보안에 대한 인식은 극히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姜경정은 "스팸메일에 의한 바이러스 유포가 한국과 브라질이 가장 많다는 사실에 주목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창희.구희령 기자 thepl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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