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천년의 길, 실크로드를 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9면

김관용
경북도지사
이스탄불-경주세계
문화엑스포 공동조직위원장

“지나온 먼 길, 마치 이 세상 귀퉁이에 나 혼자 있는 느낌이다.” 고향 계림을 떠나 구도의 길을 나선 신라 고승 혜초는 실크로드 길 위에서 이 글을 남겼다. 그 후로 1000여 년. 드디어 후손들이 그 길을 찾아 대장정을 떠난다. 3월 21일 코리아 실크로드 탐험대가 경주를 출발한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는 처음 시도되는 일이라 가슴이 설렌다.

 인류는 길을 따라 소통하고 교류하며 새로운 문명을 꽃피워왔다. 대표적인 길이 실크로드다. 신라가 번성했을 때 서방의 문물은 실크로드를 따라 경주로 이어졌고, 구도승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이 이 길을 따라 서역으로 갔다. 경주는 실크로드의 동쪽 종착지이자 출발지였다.

 우리의 주장과 달리 국제적으로 실크로드의 동쪽 끝은 중국 시안, 서쪽 끝은 터키 이스탄불로 인정된다. 일본이 이미 몇 년 전부터 실크로드를 자국으로 연장하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해오고 있다는 사실은 그래서 놀랍다. 힘겨운 일임을 알면서도 경북이 나서게 된 것은 지금 실크로드를 새롭게 정리하지 않으면 영원히 묻혀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신라문화의 영역을 세계로 넓게 확장한다는 점에서도 큰 가치가 있다고 봤다.

 탐험대가 가게 될 거리는 1만7000여㎞. 하루에 40㎞를 가도 1년이 더 걸리는 멀고 험난한 여정이다. 이들은 중국 시안과 둔황,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이란 테헤란을 거쳐 터키 이스탄불까지 가게 된다. 먼저 그 길을 지났던 선조들의 혼과 숨결을 느낄 수 있는 조그마한 흔적이라도 남아 있지 않는지 찾으며 간다. 기록도 하고 사진도 찍어 ‘실크로드 사전’으로 펴낼 계획이다. 주요 기착지에서는 표지석도 설치하고 학술회의와 문화공연도 펼친다. 비단 대신 문화를 들고 가는 문화 카라반이다. 이미 있는 통상의 옛길 위에 문화의 새 길을 열어나간다는 점에서 신(新)실크로드를 개척하는 셈이다.

 무엇보다 탐험을 통해 고대 동서 교역의 통로였던 실크로드가 경주까지 이어졌음을 밝혀낼 것이다.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일이다. 몇 년에 걸쳐 탐험대를 떠나보낼 생각이다. 그래서 ‘실크로드 신라의 길’을 확인하고 경주가 실크로드의 동단 기점임을 국제적으로 공인받고자 한다. 세계 문명교류사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대한민국의 역사적·문화적 위상과 품격을 드높이게 될 것이다.

 탐험대의 대미는 8월 31일 실크로드 서방 종착지에서 열리는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다. 1996년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에서 열려 한류 바람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터키는 문화적 자부심이 굉장하고 G20 정상회의를 개최할 만큼 경제적 위상도 높다. 특히 6·25전쟁 때는 1만5000명의 병력을 보낸 혈맹의 관계다. 터키인은 우리를 ‘캄 카르데쉬’, 피를 나눈 형제라고 부른다. 처음에는 이스탄불에서 계속 난색을 표했다. 인구 규모, 관광 인프라 등 이스탄불과 경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경주와 신라에 대한 이해, 그리고 시공을 뛰어넘는 문화 인식으로 함께할 수 있었다.

 이스탄불-경주엑스포는 로마와 신라, 동서양을 대표하는 천년문화의 만남이다. 양국의 품격에 맞게 국가 차원의 행사로 치러져 기대가 크다. 문화를 통해 새로운 협력이 이루어지고 비즈니스로 연결되는 문화외교의 현장이 될 것이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문화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고 미래 또한 문화를 통해 볼 수밖에 없다. 경북이 개척하는 신실크로드와 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가 드넓은 문화의 고속도로가 되어 희망의 문화 융성 시대를 열어 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먼 길 떠나는 탐험대의 장도를 기원하며, 국민적인 성원을 기대한다.

김 관 용 경북도지사·이스탄불-경주세계문화엑스포 공동조직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