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때 무슬림 달랜 오바마, 2기엔 유대인 끌어안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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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근처 벤구리온 국제공항에 도착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이 환영식에 참석한 이스라엘 장관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오른쪽)는 오후 예루살렘에서 이란 핵 문제와 시리아 사태 등을 논의했다. [텔아비브 로이터=뉴시스]

“오바마는 이스라엘을 관광객처럼 방문하는 첫 미국 대통령이 될 수도 있다.”(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도착해 사흘 일정의 중동 방문 일정을 시작했다. 그가 2009년 대통령에 취임한 뒤 이스라엘을 공식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지만 오바마의 이번 방문에서 실질적인 외교 성과를 기대하는 시선은 많지 않다.

 오바마 도착 직후 공항에서는 성대한 환영식이 열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직접 나와 오바마를 맞았다. 오바마는 “양국의 동맹 관계는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며 “미국은 이스라엘과 함께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오바마와 네타냐후는 오후 예루살렘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이란 핵문제 등을 논의했다. 21일에는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찾아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살람 파야드 총리를 만날 예정이다.

 이번 오바마 방문의 공식적 이유는 2010년 이후 중단된 이·팔 평화협상 재개를 설득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백악관은 이번 방문이 갈등 해결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고 로이터통신은 설명했다. 실제로 백악관은 양쪽에 내놓을 새로운 평화 계획은 없다고 못을 박았다. 오바마 1기 행정부 출범 때 백악관이 “구체적인 (평화) 실행안이 있을 때만 이스라엘을 방문할 것”이라고 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태도다.

 양쪽의 평화적 관계 구축을 막는 현실적 장벽도 어느 때보다 높다고 미 폭스뉴스는 분석했다.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강경한 입장을 굽히지 않아 이스라엘의 유대인 정착촌 철회 없이는 제안할 것이 없고, 서안지구의 파타당은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 역시 나라 안팎에서 위기에 직면해 있다. 1월 총선 이후 연정 구성까지 6주나 걸릴 정도로 장악력이 떨어졌다. 중도 성향 정당의 비율을 높이는 조건으로 18일 겨우 연정이 출범했지만, 대신 내각에서 매파와 비둘기파의 대립은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또 밖으로는 시리아 내전 확대, 이란의 핵무기 개발 등 현실적인 문제에 여념이 없다.

 이런 상황에도 오바마가 중동을 찾은 것은 실익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아랍의 봄 이후 북부 아프리카와 아랍권에 이슬람 원리주의가 급부상하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은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이와 동시에 알카에다 등 테러 세력이 아프리카와 아라비아반도에서 세를 확장해 어느 때보다도 이스라엘과의 동맹 관계가 중요한 상황이다. 임기 시작 첫해인 2009년 이집트 카이로 연설을 통해 무슬림에 손을 내밀었다면, 두 번째 임기는 유대인의 마음을 다시 얻는 것으로 시작하는 셈이다.

 오바마가 공화당 의원들의 비판에도 이스라엘 의회(크네셋) 대신 컨벤션센터에서 대학생 등을 대상으로 연설을 하기로 한 것 역시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그가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 현대 시오니즘의 아버지인 테오도어 헤르츨의 묘소 등 유대인들에게 의미 깊은 장소들을 두루 방문하는 것 역시 같은 취지다.

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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