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운도둑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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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하루중일 머리를 굽실거리고 악착갈이 일해서 호구하는것이 보통사람의 생업. 그보다는 기거나 은행을 털어 남의 벌어논 것을 훔치고 빼앗는 쪽이 쉽고 재미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남이 안쓰는 머리를 쓰고 담이 커야하며 잡히면 고생한다는 각오만 있다면. 전과 몇 범이란 칭호가 으례 따르는 것을 보면 한번 들여놓은 도둑의 길은 버리기 힘든모양이다.
그러나 신바람이 나서 그일에만 정신이 팔려사는 동안에만 생활수단을 배울 겨를이 없어진다. 「배운 드둑질」을 계속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선량한 시민이라고 이 철칙을 벗어 날수는 없다. 「래지」에게 물어보면 언젠가는 자기 다방을 가져보고 싶다는 것이고, 기생은 요정을 차려보는것이 소원이라 한다.
글발이나 배웠다고 다를바 없다. 필경에 신물이 나면서도 서생은 여전히 붓대를 늘리고, 진저리가 나는 권모술수속에서 다음 책략을 꾸미는 것이 정석이다. 그나마 그럭저럭 지내면 다행이요, 자칫 잘못하면 『영웅의 말로는 도둑, 선비의 말로는 훈장이요, 기생의 말로는 무장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제 생업에 성공한 사랍은 그들대로 자식들에게는 갈은 일을 안시키려고 다짐한다. 아들에게 안정된 학자의 길을 택하라고 권하는것이 정객이고, 학자는 군색한 연구실만은 피하라고 타이르며, 「마담」은 국가를 뒤흔드는 자식을 원한다. 하기는 사회전체를 놓고보면 이렇게해서 골고루 돌고도는 것이 세상인지도 모르겠으나.
제멋대로 흘러가는 시간을 그나마 지구의 공보이라는 명목을 붙여 잘라놓은 1년이 다가는 세말이다. 그런대로 이상야릇한 감괴에 잠기는 시절이기도 하다.
마음대로할 수 없는 사회와 인생의 틀속에서 꼼짝달싹 할 수 없으면서도 또는 그러기에 새삼 봐주지못하는 길을 근탄해보고 바꾸는 용기를 가져보려 애쓰기도 하면서 적어도 아들 딸에게만 자기의 괴로움과 쓰라림을 되풀이하지않도록 다잡은 걱정을 해보는 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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