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황철주 사퇴 부른 주식 백지신탁 바꾸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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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청장에 내정됐던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가 주식 백지신탁 제도를 이유로 사퇴하자 정부가 이 제도를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3000만원을 넘는 주식을 보유한 고위 공직자는 취임 전 주식을 모두 매각하거나 금융회사에 백지신탁하도록 한 현행 공직자윤리법을 고치겠다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김석진 윤리복무관은 19일 “지금의 제도에선 민간 부문의 유능한 인재가 공직으로 들어오는 것이 차단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며 “창업 기업이나 기업 지배권을 보유한 최대주주인 경우엔 보관신탁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주식을 팔지 않고 금융회사에 맡기는 것을 허용(보관 신탁)하는 쪽으로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공직에 있는 동안은 보관신탁 형식으로 주식을 맡겨놨다가 퇴임 후 다시 찾을 수 있게 하되, 이 기간 중 주식 운용에 따른 수익이 생길 경우 수익금은 사회에 환원하는 장치를 마련하겠단 구상이다.

 정치권에선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새누리당 이철우 원내대변인은 “현장에서 실무를 익히고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재산처리 문제로 인해 공직을 맡을 수 없는 현실은 타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다”며 “법 개정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고위 공직자가 사익을 추구하지 않고 공무에 전념하도록 하기 위해 도입했던 제도를 황 대표의 사례 같은 문제가 드러났다고 해서 고치는 것은 입법 취지를 훼손할 수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백지신탁 제도는 박근혜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 시절이던 2004년 여야가 함께 총선 공약으로 내건 제도여서 명분이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제17대 국회의원 당선 즉시 제가 가진 모든 유가증권 및 부동산을 금융기관에 백지신탁해 임기 내 재산증식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오직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에만 전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2005년 당시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이 대표발의하고 박 대통령이 공동발의자로 서명한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민주통합당 김기식 의원은 “백지신탁 제도는 사익과 공식 업무 간 이해상충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라며 “10여 년 동안 수없는 논의 끝에 마련된 걸 인사 실수 한 번 했다고 바꿀 수 있느냐”고 비판했다. 새누리당의 한 최고위원도 “한 사람의 창업 기업주를 공직에 등용시키기 위해 법을 바꾸고 엄청난 위험비용을 감수하는 게 바른 판단인가”라고 되물었다.

 보관신탁한 주식이 평균상승률을 초과해 오른 경우 이 부분을 사회에 환원하도록 하자는 방안도 논란이 일고 있다. 주식 가치는 늘 변하는데 ▶차액 측정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주식 가치 평가가 어려운 비상장 주식일 경우 어떻게 객관적 이익을 산출할지 등이 풀어야 할 난제다.

 아무리 공직자라 해도 개인의 재산을 무조건 사회에 환원하도록 강제할 수 있느냐는 것은 또 다른 논란거리다. 한성대 이창원 교수(행정학)는 “유능한 기업인에게 공직의 문호를 넓히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맡긴 주식의 초과 수익을 환원하는 방안은 현실성이 없다”며 “여야가 모두 참여하는 위원회 등에서 공직 임용 여부와 주식 보유 문제를 결정하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김원배·이소아·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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