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백지신탁 땐 회사 공중분해 쓰레기 처분하듯 매각할 수 없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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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철주 중소기업청장 내정자가 18일 오후 자신이 대표로 있는 경기도 광주 주성엔지니어링 본사 회의실에서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 제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며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강정현 기자]

“현행 공직자윤리법이 개선되지 않는 한 창업인이나 기업인이 공직에 들어가는 건 참 힘들 것 같다.” 18일 중소기업청장 내정 사의를 표명한 황철주(54)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는 상기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황 대표는 이날 오후 경기도 광주의 주성엔지니어링 본사에서 사퇴 발표 겸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그는 중기청 역사상 처음으로 벤처기업인으로 청장에 내정돼 관심을 끌었지만 ‘주식 백지신탁’이라는 공직자윤리법에 발목이 잡혀 결국 중도하차했다.

 그는 “회사의 주식을 백지신탁해야 한다고 해 재임기간만 맡겨놓는 것인 줄 알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하지만 현행법상 주식을 백지신탁한다는 건 결국 회사가 공중분해되는 걸 의미한다”며 “젊음을 바쳐 일궈온 회사까지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직자윤리법은 존중하지만 경영권이 걸린 주식을 2개월 내에 매각하라는 건 자유경쟁시장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주식시장에서 쓰레기 처분하는 식으로 경영권 주식을 매각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황 대표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졌다. 그는 “공직자가 되기 위해 경영권이 걸린 주식을 매도하라는 건 어떤 나라에도 없을 것”이라며 “경영권 주식을 그렇게 쉽게 매각하는 건 책임 있는 경영인의 모습도 아니다”고 말했다. 회사를 믿어준 고객과 주주에 대한 도의가 아닐뿐더러 고생하면서 믿고 따라준 직원들에게도 못할 짓이라는 것이다.

 황 대표는 중기청장직에 애착이 강했던 만큼 아쉬움도 더 커 보였다. 그는 이날 오전까지도 주성엔지니어링 본사를 잠깐 들러 현안만 처리하고 곧바로 중기청으로 와 업무보고를 받는 등 청장직 수행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는 전날인 17일 오후 본지와의 통화에서도 “청와대가 중기청에 국무회의 참석과 대기업의 불공정행위 고발권을 부여했다. 중기청장직에 대한 막중한 책임감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정부와 현행 법규 보완에 대한 당부도 빠뜨리지 않았다. 황 대표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은 모방형이었다. 그래서 법 규정도 모두 모방형 성장전략에 맞춰져 있다”며 “앞으로는 창조경제로 지속성장이 이뤄져야 하는 만큼 법제도나 규정도 창조경제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인 출신의 중기청장을 기대했던 벤처·중소기업계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중소기업중앙회 서병문 부회장은 “대기업에 할 말은 할 수 있는 벤처기업인이 중기청장에 중용돼 기대가 컸는데 대주주 자격 문제로 낙마하게 돼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 벤처기업 대표는 “황 대표와 같은 문제로 기업인의 공직 진출이 막힌다면 대한민국 공직은 결국 공무원끼리의 리그로 전락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장정훈·김영민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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