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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개발원조에도 한국적인 것이 통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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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박근혜 정부의 등장과 더불어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양한 욕구가 봇물처럼 분출하고 있다. 복지 확대와 청년 실업 해소부터 시작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여기에는 국가 재정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을 도와주는 공적개발원조(ODA)도 마찬가지다. 원조 규모와 무상 원조를 확대해 달라는 요청이 줄을 잇고 있다. 마침 새 정부는 ODA 규모를 2015년까지 국민소득(GNI) 대비 0.25%로 확대하는 방안을 국정과제에 포함했다. 관건은 재원이다. ODA 재원은 고스란히 국민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올해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이 된 지 4년차에 접어든다. 우리나라 ODA의 한 단계 도약을 위해 냉철한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가장 먼저 고민할 점은 예산 증액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다. 2013년 현재 0.16% 수준인 ODA/GNI 비율을 0.25%로 늘리려면 그만큼 국민 세금 부담도 커진다. 그런데 최근 실시한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인식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상당수가 현 예산 수준의 적정성에 대해 ‘적당하다’(53.8%)거나 ‘축소 혹은 중단해야 한다’(31.5%)고 밝혔다. ‘확대해야 한다’는 응답은 소수(14.7%)에 그쳤다. 또 ODA 재원이 세금이란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ODA 확대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저예산으로 고효과를 거두기 위해 우리의 비교우위를 활용한 ‘한국형 ODA’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원조 규모가 큰 서구국가들과 양으로 승부할 수는 없다. 짧은 기간 빠른 경제발전을 이룩한 우리의 경험과 노하우를 적극 활용하자는 것이다. 나아가 세금으로 자국민도 다 못 도와주면서 왜 다른 나라를 도와주느냐는 비판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ODA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해법은 협력대상국과 우리나라가 상생(相生)할 수 있는 ODA 정책이다.

 이런 관점에서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획재정부가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함께 2004년부터 실시해 온 KSP는 우리의 발전 경험을 토대로 다른 국가들에 정책자문을 제공하는 한국형 ODA의 대표 브랜드다. 특히 새마을운동·경제개발5개년계획 같은 박정희 정부 시절의 개발 경험을 박근혜 정부에서 업그레이드시킨다면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하겠다.

 KSP는 후속 경제협력 사업으로 연결돼 우리 기업과 인력의 해외 진출에도 기여할 수 있다. 국제기구와 공동 추진하는 KSP 공동컨설팅은 우리 기업의 국제기구 조달사업 수주 가능성도 높여준다.

 ODA 예산은 국민의 땀이 어린 소중한 세금이다. 국가 위상을 제고하고 미래 세대에 꿈과 희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개발을 주요 20개국(G20) 어젠다로 이끌어낸 저력이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발휘한 ‘한국형 펜싱’의 저력과 싸이의 ‘강남스타일’ 인기를 이어 ‘한국형 ODA’로 진검승부를 펼칠 때다.

윤 증 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