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건, 100일간 467명 면담…메르켈, 사전 조율로 갈등 진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4호 03면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문턱이 닳도록 의회를 방문하고, 여야 의원들을 일대일로 설득해 건강보험 개혁안을 통과시켰는데….”
정부조직법 개정안 통과가 지지부진한 걸 안타까워하며 새누리당 핵심 인사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대통령이 의원들 설득에 적극적이지 않으면 국정이 굴러가기 어렵다는 얘기다.

외국의 대통령과 의원 관계는

실제 오바마는 2010년 건강보험 개혁안을 놓고 공화당은 물론 여당인 민주당에서도 반대가 심하자 민주당 반대파 의원을 전용기인 ‘에어포스원’에 태우고 설득했다. 공화당 지도부와는 7시간 넘게 끝장 토론을 벌였다. 최근 정부 부채 문제가 불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과 공화당 상·하원 지도부를 잇따라 만나고 의원들과 만찬하며 이해를 구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엔 로널드 레이건이 의회와 성공적인 관계를 맺은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집권 초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 핵심 경제법안을 통과시켜야 했던 레이건은 취임 뒤 100일간 연방 상·하원 의원 467명을 만났다. 만남의 자리를 49회 마련하면서다.

그는 ‘입법전략단(Legislative Strategy Group)’도 꾸렸다. 보수·온건파가 고루 포진돼 ‘대통령이 법안 통과를 위해 할 일은 뭔가’ ‘의회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을 때 어떤 대안이 필요한가’를 논의했다. 레이건은 종종 절친한 의원 몇 명을 백악관으로 불렀다. 저녁을 함께하고 탁자에 둘러 앉아 농담을 주고받는 ‘홀아비의 밤’을 즐겼다. 리처드 닉슨부터 빌 클린턴 행정부까지 30여 년간 백악관 보좌관을 역임한 데이비드 거겐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는 이 사례를 언급하며 “(의회와의) 동지애 없이는 어떤 지도자도 살아남을 수 없다”고 평했다(책 『CEO 대통령의 7가지 리더십』).

여성 지도자도 국회와의 관계에서 정치력을 발휘했다. 칠레 대통령(2006~2010)이었던 미첼 바첼레트는 좌파 중에서도 소수파 출신이라 개혁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키려면 좌파 정당들을 연합하는 게 필요했다. 이에 바첼레트는 소아과 의사 출신답게 상대방의 말을 먼저 들은 다음 진단을 내리고, 치료법을 내놓는 방식을 썼다(프랑스 언론인 크리스틴 오크렌트의 책 『왜, 여성대통령인가?』). 취임 뒤 첫 연설에서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정부, 국민과 과거와 다른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정부가 되겠다”고 선언해 반대파의 지지도 끌어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의회와의 관계를 잘 조율하는 여성 지도자로 꼽힌다. 유진숙(정치학) 배재대 교수는 “메르켈은 절대 갈등을 표면화하지 않고 굉장히 치밀하고 광범위하게 사전 조율 작업을 해 집권 후 의회 협력이 잘 이뤄졌다”고 말했다.

반면 영국 총리(1979~90)를 지낸 마거릿 대처는 독선적인 리더십으로 자신이 속한 보수당 의원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1990년 유럽통합 반대 입장을 고수하다 당 지도부의 반발을 샀다. 그해 11월 당내 경선 1차 투표에서 탈락, 11년간의 총리직을 그만두고 이듬해 5월 정계를 떠나야 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