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지 같은 남자 유준상

중앙일보

입력

약간은 오버하는 동작,
여자 앞에서 괜히 큰소리치지만
한없이 연약하고
부드러운 남자, 봉강철.
더도 덜도 아닌 딱 유준상의
요즘 사는 모습이다.

내 몸에 맞는 옷, '봉강철'


약속 시간 10분 전쯤 그가 전화를 했다. "10~15분 정도 늦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깍듯하게 예의를 차리는 사람? 대개 거부감이 들거나 친근하거나, 극명하게 두 가지 감정이 생긴다.

계단을 껑충 뛰어오르면서 들어오는 그를 만난 첫 느낌, '아, 상쾌해'. 티 없이 하얀 피부, 양쪽 볼에 깊게 자리한 보조개… 그리고 그 보조개가 쏙 들어가도록 환하게 웃으며 꾸벅 인사하는 붙임성까지. 베이지색 면바지에 같은 컬러의 니트와 후드 점퍼를 입고, 등산화 느낌의 워커를 신었다.

"워낙 여행을 좋아해요. 시간이 나거나 일이 힘들다고 느껴지면 무작정 떠나죠. 국내도 좋고, 해외도 좋고. 고등학교 때부터 그랬어요." 걱정과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리는 데는 여행이 최고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는 천상 자유인이다. 예의바른 자유인.

7년간 연기생활을 했는데 그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건 지난해 KBS 주말 연속극 '태양은 가득히' 에서 개성적인 연기를 선보이면서부터. 그전에도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는 많이 떴지만 거기에 출연했던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만큼 그는 드라마에 녹아 있다.

튀거나 오버하지 않고, 그저 극중 인물에 충실한 조연이었기 때문. 그렇게 밑바탕을 확실히 다져서일까, 그는 지금 한창 신이 나 있다. MBC 일요 아침 드라마 '어쩌면 좋아'와 MBC 주말 연속극 '여우와 솜사탕'에서 코믹하고 쾌활한 청년으로 등장하여 인기몰이 중이기 때문. 사실 인기보다 더 신나는 건 촬영팀과의 환상적인 호흡에 있다.

특히 '여우와 솜사탕'에서 봉강철을 연기할 때는 애드리브를 많이 한다. 그만큼 상대방 연기자들과 호흡이 잘 맞는다는 사실. 아무리 애드리브로 극중 분위기를 살려보려고 해도 상대방이 안 받아주면 어색하게 끝나게 마련인데 '여우와 솜사탕' 식구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더 편안하고, 촬영장 분위기도 좋고, 녹화하러 가는 발걸음도 가볍다.

살아 있는 눈빛에 빠지다


통쾌하게 웃는 "하하하" 웃음이 가벼워 보이지 않고, 차분히 자기 생각을 말하는 그의 말과 진지한 눈빛에 점점 신뢰가 생기기 시작하는 기자. 여지껏 만나왔던 연예인 중 억지로 자기를 멋지게 포장하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답하는 자세를 보였던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

"연기자는 언제, 어떻게 다른 삶을 살지 모르고 변할지 몰라요. 언제나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거죠. 제가 매일, 매시간 그림을 그리지만 예전의 그림과 지금 그리는 건 다르거든요. 매번 스타일도 바뀌고 담는 내용도 달라져요. 연기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연기자란 이런 것이다.'라고 규정 지을 수 없네요."

오랜 시간 갈고 닦아온 프로의 여유와 자신만만함이 그의 눈에 저절로 묻어나왔다. 7년이나 연기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시기가 분명히 있었을 텐데 그는 단호히 "없었다."고 말한다. 힘들어도 '이건 힘든 게 아니다, 이 정도의 어려움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라며 자기 최면을 걸어선지 지금 생각해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힘든 일이 없었단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그의 얼굴엔 그늘이 없고 여유로움만 남아 있다.

변화무쌍, 재즈 같은 남자


인터뷰 내내 말을 아끼며 진지하게 답하던 그가 사진 촬영에 들어가자 바로 '봉강철'로 변했다. 촬영 스태프에게 농담을 던지며 장난치듯 포즈를 취하기도 한다. 나중에 결혼하면 어떤 남편, 어떤 아빠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다.

"전 일이 없으면 거의 집에 있어요. 집에 있어도 할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것저것 하다보면 하루가 금세 가거든요. 특히 조카들과 잘 노는데, 그 애들과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해요. 나중에 분명히 가정적인 남편이 될 거예요."

술도 즐기지 않고, 음악·그림을 좋아하고,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자상한 남편, 아빠가 될 자질이 충분하다. 요리에는 관심이 많은지 물었다.

"먹는 걸 좋아해요. 물론 젤 잘하는 건 라면 끓이기지만, 가끔은 인스턴트 스파게티를 해먹어요. 만들기 간단하고, 편해서 좋더라고요. 이때는 면을 올리브유에 볶다가 소스를 넣어서 만들면 훨씬 맛있어요."

요즘 그가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극중 '봉강철'처럼 나이가 아주 어린 여자와 사귄다면 어떨 거 같냐는 거다. 그는 딱 잘라 상관없다고 했다.

"저와 마인드 같고, 취미 같고, 이야기만 통하면 나이는 상관없을 것 같아요." 그와 사귀려면 재주가 많은 사람이어야 가능할 듯싶다. 스포츠, 그림, 악기 연주, 노래 등 다방면에 재주가 남다른 그와 같은 취미생활을 해야 한다니 말이다. 꼭 이 모두를 잘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최소한 자기가 하는 걸 이해해주고, 좋아해주고, 이야기를 나눌 정도면 된다는 것.

조용하다 싶으면 개구쟁이 같고, 터프하다 싶으면 한없이 자상한…, 변화무쌍한 얼굴을 가진 유준상. 연주할 때마다 악보와 느낌이 달라지는 재즈와 잘 어울리는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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