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년반 허송한 매각협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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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반 이상을 끌어온 현대투신증권의 해외 매각 협상이 결렬 위기에 처했다.

협상 당사자인 정부와 미국의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AIG)이 모두 협상 종결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AIG가 아니라도 매각 협상은 계속한다는 방침이나 시간적 차질과 함께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구조조정 의지가 손상되는 부작용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협상 결렬의 일차적 원인은 AIG측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AIG측은 그동안 구조조정 일정에 쫓기는 우리측의 약점을 파고들어 일방적인 요구 조건들을 계속 내놓았고, 또 대부분 관철시켰다. 현대투신과 묶어 인수키로 한 현대증권의 인수 가격을 양해각서 체결 시점의 시세보다 훨씬 싼 주당 7천원으로 합의한 것이 좋은 예다.

AIG는 현대투신 인수 이후에 추가로 발생할 수 있는 부채(우발채무)를 우리 정부가 세금으로 대신 물어줄 것을 마지막까지 요구했다. '풋백옵션'으로 불리는 이같은 요구를 우리 정부가 거부하자 협상 결렬을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우리 정부에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협상에는 상대가 있다지만 이런 상황까지 밀려난 협상 기술에 문제가 있다. 현대증권 경영진이나 소액주주들의 반발까지 눌러가며 AIG의 요구를 들어줬지만 결국 매각에 실패했다.

근본적으로는 외환위기 직후 제일은행을 허겁지겁 매각하는 과정에서 인수자에게 풋백옵션을 보장해준 선례가 두고 두고 걸림돌이 되고 있다. 차제에 제일은행처럼 일방적인 매각은 더 이상 없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힐 필요가 있다.

이 시점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는 현대투신의 새로운 인수선을 찾는 일이다. 부채가 5조6천억원에 이르는 현대투신은 인수자가 없으면 공적자금 2조원이 투입돼야 한다.

한국의 거시경제나 증시 상황이 호전되고 있는 만큼 협상 여건이 과거처럼 어렵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정부는 이번 협상 결렬을 교훈삼아 다양한 전략을 세워 협상 수완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야 대우자동차나 하이닉스반도체 등 다른 업체들의 해외 매각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도 차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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