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동의 중국世說] 중국 고대 유머와 처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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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숙한 유머는 사교모임에서 입을 수 있는 가장 멋진 의상의 하나이다. 유머는 인간들의 사상, 지혜, 영감 등의 결정체로서 인간관계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는 보통 유머라 하면 서양 유명 인사들의 재치 있고 품위 있는 笑話나 코미디언들의 익살을 연상케 된다. 하지만 근엄하여 유머감각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중국인들도 함축적이고 온화하되 때로는 날카로운 풍자적 유머를 즐기는 민족이다. 時經, 楚辭, 諸子, 國策에서부터 唐詩에 이르기까지, 풍성한 풍자와 해학이 출렁거린다. 白居易의 新樂府 풍유시는 오늘날 위트 넘치는 평론이고, 특히 재치 있는 비유의 대가 莊子는 가히 유머의 大師라 할만하다.

하루는 고대 송나라의 曹商이 진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수레 백대를 선물로 받아 와서 莊子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처럼 가난 속에 짚신이나 삼는 재주는 없지만 군주를 한 번 깨우쳐주고 백 대의 수레를 받아오는 장기가 있답니다." 그러자 장자는 "진나라 왕은 자기의 종기를 짜 주면 수레 한 대를 주고, 치질을 핥아 주면 수레 다섯 대를 준다던데, 자네는 이렇게 많은 수레를 얻었으니 진왕의 치질을 얼마나 핥아 준 건가?"라고 되받았다. 조상의 유치한 자랑과 타인멸시에 대해 과연 장자다운 통렬한 반격이 웃음 속에 비수를 느끼게 한다.

제나라 재상 晏子는 기지와 유머 넘치는 재치로 능란한 외교술을 자랑했다. 어느 날 안자가 초나라 사신으로 가게 되었다. 안자가 초나라 궁궐 대문에 이르자 궁지기는 안자를 궁궐의 좁은 쪽문으로 안내했다. 이에 안자는 "개 나라의 사신으로 가는 자는 개구멍으로 들어간다. 지금 나는 초나라의 사신으로 왔으니 이런 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고 소리쳤다. 이에 초나라 대신들은 그를 대문으로 안내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초나라 왕이 "제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없기에 당신 같은 자를 사신으로 보냈소? 라고 비아냥거렸다. 이에 안자는 "우리 제나라는 사신을 보낼 때 상대국 군왕의 수준에 따라 선발하는 데 본인이 가장 불초한 사람이라서 초나라 사신의 적임자로 임명된 것입니다"라고 응수하였다. 초나라 왕과 대신들의 치졸한 상대국 제압 전술이 안자의 재치 있는 화술로 인해 초나라를 금수의 나라로 만들고 초왕을 가장 저질의 왕으로 전락시킨 순간이었다. 안자의 우회적이고도 순발력 있는 기지가 제나라의 위상을 한껏 고양시킨 외교술이 된 것이다

서양 지도자로서는 링컨대통령과 처칠수상의 유머가 인구에 회자된다. 어느 날 링컨의 정적인 '스티븐 더글러스'가 청중 앞에서 "링컨은 두 얼굴을 가진 이중인격자"라고 비난했다. 이에 링컨이 “여러분 판단에 맡깁니다. 만일 제게 다른 얼굴이 있다면 이런 중요한 자리에 이 못 생긴 얼굴을 가지고 나왔겠습니까?" 라고 대응했다. 청중의 폭소와 함께 상대를 초토화 시킨 링컨의 정치 일화다. 영국 하원의원 선거 때 처칠의 상대후보는 "처칠 같은 늦잠꾸러기를 의회에 보내서야 되겠습니까?"라고 공격했다. 처칠은 아무렇지 않은 듯 "여러분도 나처럼 예쁜 부인과 산다면 아침에 결코 일찍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응대했고, 연설장은 폭소가 터졌다. 위대한 지도자들은 이렇게 정적들의 공격을 부드럽고도 재미있는 유머로 받아넘겨 분위기를 일거에 반전시킨다. 유머의 힘 또한 위대한 정치지도자들의 역량만큼이나 위대하다는 것을 실감케 한다.

유머는 인류 특유의 정서적 반응으로서 우리에게 단지 웃음만 주는 것이 아니다. 심리적인 안락과 쾌감도 주며, 자기만족과 해탈도 느끼게 한다. 또한 타인에 대한 양해와 용서, 상호 화해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러기에 개인 간에나 가정에서는 물론 직장과 사회에서도 유머는 매우 긍정적이고 생산적인 윤활유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아가 유머는 인간의 사고방식을 보다 개방적이고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주기도 한다. 이런 맥락에서 품위 있고 재치 있는 유머는 우리를 성공의 길로 인도하는 처세술로서의 의미도 크다 할 것이다. 처세술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유머의 기초는 관용과 이해에서 출발해야한다. 결코 저속하거나 악의적이어서는 안 된다. 타인을 지나치게 폄하하거나 원색적인 자극도 곤란하다. 따라서 세련된 유머감각을 갖춘 처세술을 배양하려면 인간은 원래 미완성품이라는 전제하에 지적 소양을 닦고, 다양한 인물들과의 접촉을 통해 인격을 수양해야 한다.

카네기는 "유머는 일을 유쾌하게, 교제를 명랑하게, 가정을 밝게 만든다." 라고 말했다. 우리 젊은이들이 동서 고전을 통해 유머와 인간 처세술을 익혀 개인의 성공과 밝은 사회건설을 이룩해 나가기를 소망해 본다.

한형동 산둥성 칭다오대학 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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