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쇼이 감독 황산 테러, 무용수가 사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8면

프랑스혁명(1789년)보다 오랜, 237년 전통의 볼쇼이발레단이 추악한 내부 테러로 얼룩졌다. 소속 스타 무용수가 예술감독에게 황산 테러를 가한 피의자로 붙잡혔다.

 5일(현지시간) 인테르팍스 등 현지 언론은 러시아 경찰이 볼쇼이발레단 예술감독 세르게이 필린(42·사진)에 대한 테러 혐의로 발레단의 발레리노 파벨 드미트리첸코(29) 등 3명을 체포했다고 전했다. 필린은 지난 1월 17일 자택 앞에서 마스크를 쓴 괴한 2명이 황산을 뿌려 얼굴과 눈에 중상을 입었다. 그는 모스크바와 독일에서 여러 차례 수술을 받은 끝에 회복 중이다.

 러시아 경찰은 한 달 넘게 수사를 벌인 끝에 드미트리첸코가 2명의 청부업자를 고용해 테러를 사주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2002년 발레단에 들어와 ‘백조의 호수’‘이반 뇌제’ 등에서 주연급 무용수로 활약한 스타였다. 경찰은 드미트리첸코가 범행을 자백했으며 개인적 원한이 동기였다고 전했다. 국영 채널1 TV는 드미트리첸코의 여자 친구이자 동료 무용수인 안젤리나 보론트소바가 필린과 사이가 나빴다고 보도했다. 보론트소바의 팬들은 필린이 그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비난해 왔다.

 발레단 대변인 카테리나 노비코바는 “수사 결과 발표가 발레단의 암흑기를 끝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볼쇼이의 치부는 금세 아물기 어려워 보인다. 볼쇼이의 스타 발레리노였던 필린은 2011년 전임 겐나디 야닌의 외설적 사진이 유포돼 문제가 되자 예술감독직을 이어받았다. 이후 적잖은 무용수가 그의 지도 방침에 반발하며 극장을 떠났다. 현재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인 니콜라이 치스카리제도 그간 필린과 대립해 용의자로 지목돼 왔다. 그는 필린이 자신의 제자 발레리나에게 “스승이 떠나면 ‘백조의 호수’ 주요 배역을 주겠다고 회유했다”며 “현재의 볼쇼이가 스탈린의 폭정 시대를 닮았다”고 비난해 왔다. 필린은 사건 발생 후 “테러 배후가 누군지 알고 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세계적 발레단 내부의 무용수 간 질시와 암투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이충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