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연설문에 ‘배급 줄이자’ 많았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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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북한 사람들은 늘 날씨에 민감했다. 날씨가 수확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1987년부터 7년간 평양에 머물며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어록, 연설문 등을 영어로 번역한 영국인 마이클 해럴드(41·사진) 씨의 얘기다. 현재 중국 베이징 국영 TV에서 일하는 해럴드 씨는 25일(현지시간) 미국의 북한전문 인터넷 매체인 NK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평양의 특별한 경험에 대해 증언했다.

 “7년 동안 북한 친구를 사귀고 북한 여성과 사랑에 빠진 일도 있지만 돌이켜 보면 북한의 실제 모습을 거의 알지 못했다. 기근이 심해질 경우 평양의 외국인 거주지에는 높은 담이 쳐졌고, 북한 사람들과의 접촉이 금지됐기 때문이다.”

 그는 “김정일의 연설문을 번역하던 중 하루 세 끼 배급을 두 끼로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자는 문구를 발견하곤 했다”며 “식량사정이 좋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05년 평양에서의 생활을 엮은 책 『동무와 이방인(Comrades and Strangers)』을 펴낸 해럴드 씨는 지금도 북한 관련 책, 선전물을 영문으로 번역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김일성 주석 생일 100주년 열병식에서 한 연설문을 번역했다. 그는 “1년에 한두 차례 북한 측 인사가 원고를 들고 나타나 일을 맡기곤 한다”며 “특별히 중요한 연설일 경우 특별 출장을 올 때도 있다”고 말했다.

 번역을 할 땐 금기가 있다고 한다. “남한(South Korea)이나 북한(North Korea)을 표현할 때 첫 글자인 ‘S’와 ‘N’을 대문자로 써선 안된다고 교육받았다. 북한에서 남북한은 공식적으로 하나의 국가인 만큼 첫 글자를 대문자로 쓰면 별개의 나라가 되기 때문이다.” 영국 버밍검 출신의 그는 리즈대학 시절 학교 취업지도과를 통해 북한 일자리를 처음 소개받았다. 평양에선 관영 ‘평양타임스’도 번역했다. 그는 “북한 사람들은 친절했고 생활은 어려웠지만 유머감각이 있었다. 지금도 북한의 산과 고즈넉한 풍경이 그립다”고 말했다.

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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