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망이를 보면 주인이 보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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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이승엽(37·삼성)은 숙소에 들어와서도 배트를 소중히 다룬다. “에어컨 바람도 쐬지 않게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타자에게 배트는 ‘가장 중요한 신체’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 타자들은 자신에게 최적화된 배트를 개인 주문해 사용한다. 10g의 무게, 1㎜의 두께 차이가 성적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대표팀 중심타선을 이룰 이승엽·이대호(32·오릭스)·김태균(32·한화)의 배트에도 개성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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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포 방망이는 900g 이상=타자 유형별로 선호하는 배트는 다르다. 일반적으로 거포들은 900g 이상의 무게로 반발력을 높인다. 배트의 무게중심을 헤드 끝에 놓고, 그립(손잡이)이 얇은 곤봉 형태로 만들어 원심력을 키운다. 34인치의 긴 배트를 쓰며 노브(배트 손잡이 아래 튀어나온 부분)를 얇게 해 상대적인 길이까지 늘린다. 단거리 타자는 그립과 헤드 두께의 차를 최소화해 배트 컨트롤을 용이하게 한다. 길이도 33.5인치로 줄이는 경우가 많다. 무게중심은 스윙 스폿과 헤드 끝까지 넓게 분포시킨다. 공을 맞히는 데 용이한 형태다. 중장거리 타자는 중간 형태의 배트를 제작 주문한다.

 ◆실전과 훈련은 다르다=이승엽은 2012년 900g짜리 배트를 주로 썼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무게보다 다소 가벼웠다. 왼 어깨 통증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WBC를 앞두고는 일본 미즈노사에 920g의 배트를 주문했다. 그는 “올해엔 어깨에 통증이 전혀 없다. 조금 무게를 올려도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대호와 김태균도 920g짜리 배트를 쓴다. 김태균은 체력에 문제가 없을 때 배트 무게를 940g으로 올린다. 정규시즌보다 한 달여 앞서 열리는 WBC를 앞두고 김태균은 롤링스사와 미즈노사에 920~930g의 배트 제작을 부탁했다. 몸이 덜 풀린 상태라면 조금 더 가벼운 방망이를 써야 배트 스피드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훈련 때 배트는 정규시즌보다 더 무겁다. 이승엽은 960g, 이대호와 김태균은 980g의 배트를 쥐고 배팅 케이지에 들어선다. 이는 배트 스피드를 올리기 위한 과정이다. 무거운 배트로 힘을 키우고 실전에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배트를 들면 ‘속도’에 자신감이 생긴다.

 ◆그립 두께는 제각각=타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건 배트와 손이 닿는 그립이다. 김태균은 일반적인 거포가 원하는 얇은 그립을 택했다. 공에 대한 반응이 다소 늦어도 헤드의 무게에 의존해 배트가 빠르게 돌고 헤드의 무게로 공을 멀리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김태균은 “손잡이가 두꺼우면 배트 컨트롤이 어렵고 스윙할 때 무딘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두꺼운 그립을 선호한다. 배트의 밸런스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손잡이가 가늘고 얇으면 방망이 끝에 무게가 실려서 밸런스가 맞지 않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스윙 스피드에 자신 있는 이승엽은 배트가 흔들리지 않게 잡아주는 두툼한 그립을 사용한다.

 이대호의 그립은 중간 지점에 있다. 이대호는 “양손으로 쥐었을 때 꽉 차는 느낌이 들어야 한다. 너무 두꺼우면 둔해지고 너무 얇으면 손에서 빠진다”고 말했다.

하남직·유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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