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수학여행단에 '한류 난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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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중에는 맘껏 소리치고 박수치세요. 자, 이번에는 남자분들만 함성 시작!'

어두컴컴한 무대 위 슬라이드에 중국어 자막이 뜨자 여기저기에서 "어, 우리말도 나오네"라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순간 변성기를 갓 지난 남학생들의 함성소리, "야후!"

21일 오후 4시 서울 정동 난타 전용극장에는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다. 중국 베이징공업대학 부속중.고교 1백50명의 학생들이 '난타' 공연을 보기 위해 자리를 잡은 것. 지난 20일 4박 5일간의 수학여행차 한국에 온 이들은 분위기가 무르익자 연신 박수를 치며 극에 몰입했다.

중국 수학여행단의 한국 방문은 이번이 첫 사례다. 대만이나 홍콩.싱가포르 등에서 많은 관광객이 한국을 찾고 있지만 시장 잠재력이 가장 큰 중국 본토 시장은 아직 한국에 문호를 활짝 열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가 중국 현지에서 한국을 알린 결과 중국의 수학여행 단체가 한국에 들어오는 물꼬가 트인 것이다.

이날 '난타' 관람은 드라마.가요 등 한류(韓流)에 익숙한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한국적 공연 예술을 직접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난타'는 식당의 주방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그린 넌버벌(말이 없고 몸짓만 있는) 퍼포먼스다. 국내에서 제작해 영국.일본 등 해외에서 호평을 받은 한국의 주력 문화 상품이기도 하다.

난타 전용극장으로서도 중국 본토의 단체 여행객은 이번이 처음이다. 요즘 난타 전용극장을 찾는 이는 주로 외국인들이다. 일본인이 50%, 싱가포르.대만 등 동남아인이 30%, 서양인이 10% 정도다. 중국인은 개별적으로 찾아오는 관객들뿐이다.

일본어 여행서에 '난타'에 대한 상세 정보가 있을 정도로 일본인의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것에 비해 초라한 수치다. 극장 관계자는 "중국의 젊은이들이 공연을 지속적으로 보고 갈 경우 입소문을 타면 그 확산 속도는 상상 이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의 H.O.T나 베이비복스 같은 스타들을 좋아한다"는 중국인 학생 장츠(張馳.13)는 공연을 보고 난뒤 "한국에 이런 공연이 있는지 깜짝 놀랐다. 돌아가면 친구들에게도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고 말했다.

뉴욕에 가면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관심을 갖듯, 한국에 오면 볼 수 있는 대표 문화 상품의 개발이 절실하다. 한국관광공사 중국팀의 유진호 과장은 "지난해 2월 중국에서 '난타' 공연을 보여주며 월드컵 홍보행사를 할 때 현지 반응이 뜨거웠다"며 "각종 문화 공연을 체험하는 관광 프로그램을 더욱 늘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 수학 여행단은 향후 제주도와 부산 관광에 나선다. 한류의 본고장을 찾은 이들에게 우리의 풍물 말고도 또 다른 문화적 충격을 안겨 준다면 한류는 다른 양상으로 확산될지 모른다. '난타' 팀이 오는 3월 17일부터 14일간 중국의 베이징.상하이 등에 투어공연을 나서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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