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김승기 '외로운 투혼'

중앙일보

입력

농구팬 가운데 특정 선수를 사랑하는 매니어 그룹이 있다. 이들은 팬들을 많이 거느린 선수의 팬들을 경멸하며 '농구를 아는 농구팬'임을 자부한다. 대학스타 정훈(성균관대), 프로의 김승기(삼보 엑써스)·오성식(LG 세이커스)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 대학을 졸업하는 정선수는 둘째치고 김승기나 오성식은 좀 독특하다. 두 선수의 매니어들은 과거의 어떤 순간들을 기억한다. '중앙대 졸업반 김승기''연세대 신입생 오성식'을 그리워한다. 그리고 현재라는 순간에 그 빛나던 시간들을 되살리고자 한다.

지난 18일 썬더스와의 잠실 경기에서 김승기는 절정의 플레이를 펼쳤다. 26득점하며 엑써스를 승리의 문턱까지 밀어올렸다. '김승기 매니어'들은 만족했다.

그러나 김선수는 패배의 아픔에 가슴을 움켜쥐었다. 거듭되는 패배 앞에서 김선수는 작아져가는 자신을 느꼈다.

하지만 1994년 아마추어 삼성에 입단해 맞은 첫 시즌을 빼고 김선수가 스스로에게 만족한 적이 있었던가? 95년 이후 몸 곳곳이 아팠고 부상이 나으면 늘 후배가 주전으로 뛰고 있었다.몸보다 마음이 더 아프던 시간들이었다.

지난 시즌 김승기는 이적을 고려했다. 모비스 오토몬스와 SK 빅스에서 김선수를 원했다. 그러나 구단주와 코칭스태프 모두 반대했다.

특히 플레잉 코치 허재는 "신기성이 군에 입대하면 팀에 가드가 없다. 내가 '데리고' 뛰겠다"며 펄펄 뛰었다.

약속대로 허선수는 김승기와 함께 시즌을 시작했다. 오랜만에 풀타임 스타팅 가드로 출전한 김선수가 다소 부진한 시즌 초반 허선수의 기여도는 엄청났다.그러나 2라운드 중반을 지나면서 김선수가 허재를 '모시고' 뛰는 듯한 경기가 늘었다.

허벅지와 장딴지 통증에 시달리는 허선수는 전경기를 뛰기 어렵게 됐고 김선수가 허선수의 컨디션에 따라 경기를 조율하고 역할을 넘겨받는 일이 잦아졌다. 주연과 조연이 바뀌었고 김선수는 엑써스의 유일한 동력원이 됐다.

김승기에게도 추억이 있다. 잠실학생체육관 코트 바닥이 내려앉을 듯한 강력한 드리블과 힘찬 플레이로 '쇠절구'라는 별명을 얻었던 대학시절이다. 김선수는 30세를 넘어가는 이 겨울이 그 추억을 되살릴 마지막 기회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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