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민간 소비자단체 만든 ‘은발의 여인’ 정광모 별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2006년 3월 정광모 회장. 빨간색 상의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중앙포토]

우리나라 첫 민간 소비자운동 단체를 창립한 ‘소비자 운동의 대모(大母)’ 정광모 한국소비자연맹 명예회장이 12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84세.

 빨간 상의와 은발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고인은 ‘흰 머리의 여인을 조심하라’는 말이 기업들 사이에서 돌 정도로 소비자 운동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고인의 활약은 소비자 권익 향상은 물론 궁극적으로 기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언론인 출신인 고인은 여기자로서는 처음으로 청와대(당시 경무대)를 출입했다. 1951년 평화신문 사회부 기자로 시작해 62년 한국일보에 입사한 고인이 소비자 운동에 뛰어들게 된 것도 기자 경험에서 비롯됐다.

고인이 68년 한국여기자클럽 회장 자격으로 방문단을 이끌고 일본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고인은 “당시 일본 여기자들이 소비자 단체로부터 ‘과자상자 속에서 쥐똥 발견’ 등의 기사를 취재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생전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회고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소비자가 목소리를 낼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고인은 바로 그해 YWCA 산하에 ‘소비자 고발센터’를 설치하는 데 힘을 썼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70년 첫 민간 소비자 운동 단체인 한국소비자연맹을 창립했다. 78년에는 민간 소비자 6개 단체를 모아 소비자단체협의회를 발족했다. 이듬해에는 소비자보호법 제정을 이끌었다. 정치부 부장대우, 논설위원 등을 지낸 한국일보에서 80년 퇴사했다. 소비자 운동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96년 ‘소비자 보호의 날(12월 3일)’을 제정하는 데 기여했고 같은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만 4차례 역임했다. 고인은 79년부터 지난달 24일까지 34년 동안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을 지냈다. 2002년에는 경원대 이사장에 취임하며 교육자로 변신했고, 같은 해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미래연합을 창당했을 때 발기인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고인은 평생 미혼으로 살았다. 평생 몸바친 소비자 운동의 동료들이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고인이 43년 동안 소비자 운동에 헌신한 유지를 기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장으로 장례를 치른다. 김연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회장 등 10개 소비자단체 회장이 공동장례위원장을 맡았다. 김 회장은 “기업이 막강한 힘을 갖고 있고 소비자라는 개념조차 없을 때 이 땅에 소비자 운동을 세우신 분”이라며 “이제는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의 소비자 운동을 참고할 정도로 키워내신 고인을 기리기 위해 한마음을 모았다”고 말했다.

80년부터 고인과 함께했던 강정화 한국소비자연맹 회장은 “입버릇처럼 ‘나는 챙길 가족이 없으니까 부담도 없다’며 소비자 운동에 헌신하셨다”면서 “당시 엘리트 여성으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항상 현장에 실무자와 함께 다니시며 시장에서 저울까지 직접 달아보시던 분”이라고 추억했다. 고인은 항상 소비자 상담 전화를 직접 받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김재옥 소비자시민의모임 회장은 “식품·화장품 등 불량 제품이 극성이던 시절 소비자 상담을 도입하고 사회를 변화시킨 독보적인 분”이라고 고인을 기렸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 발인 15일 오전 9시. 장지는 충북 음성군 꽃동네다. 02-2258-5940.

구희령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