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이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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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우리 장창선 선수가 「아마·레슬링」에서 우승한 것이 계기가 돼서, 학예술·체육 등에서「세계적」인 이름을 날린 사람들에게 보조비를 주자는 얘기가 있다. 좋은 얘기다. 온 세상이 다 우러러 볼만한 큰 일을 하고도 집 한칸 지니지 못하고 호구에 급급해선 안될 일이다. 다만 보조비를 누구에게 주느냐를 결정하는 대목에 가서 혼선이 빚어지면 큰 일이다. 「세계적」이란 말의 뜻이 썩 분명치 않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큰 나라에선 웬만해서는 「세계적」이니「국제적」이니 하는 형용사를 쓰지 않는데, 우리는 특히 우리「매스콤」은 「세계적」「국제적」「세기적」을 남발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세계적 수준의 음악가 몇 사람을 배출했고, 최근엔 수십종의 특허를 딴「세계적석학」의 출현을 보았고, 「세기적」가수며 역사며 화백이 빈번히 나온다.
그러나 진짜 가치 있는 업적은「매스콤」의 도움 없이, 실상「매스콤」의 망각지대에서 찬연한 빛을 발하는 법. 그래도 나라안에 그야말로 세계적인 감식안을 지닌 각 부문별 직능단체가 건재하다면, 그 업적의 진가는 충분한 인정을 받는다. 인간의 모든 활동이 분화의 극을 달리고 있는 오늘날, 세계적 업적이나 기예의 진가를 일반 시정인이 알 도리는 없고, 극소수의 동업 동학자 들만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에 그러한 권위 있는 단체나 학회가 얼마나 존재하는가. 세계적 가치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때로 시정인들에게 해설해 줄 수 있는 권위가 띠로 없다면, 결국「세계적」인사의 선정에는 심사에 참여하는 이들의 편견이나 친분관계가 개입해서, 원래의 좋은 취지를 망쳐 버리기 쉽다. 혹은 그 정도에도 이르지 않고, 「매스콤」이 울려대는 장단에 헛되이 놀아날 우려가 있다.
한국에서「세계적」인사가 배출되는 이면에서, 본인이나 그의 친지 가족들의 눈부신 활약으로 전개되는 소위 PR라는 것의 위력을 생각해 보라.
결국「노벨」상과 세계적 경기의 금「메달」정도가 분명하고, 나머지는 모두 모호하다. 법을 만들땐「세계적」이란 말의 정의를 분명히 내려놓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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