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 대북 심리전 vs 명백한 대선 개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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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국가정보원 여직원 김모(29)씨의 지난해 말 대통령 선거 개입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막판 고민에 빠졌다. 김씨가 ‘오유(오늘의 유머)’ 등 인터넷 사이트에 작성한 글 등이 국정원 고유의 업무에 해당되는지, 대선 개입 활동으로 볼 수 있는지를 두고서다. 김씨는 당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에게 불리하게 인터넷 여론을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김씨의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 수서경찰서에 따르면 4일 현재까지 드러난 김씨의 인터넷 활동은 ▶대선 관련 게시물에 99번에 걸쳐 찬반 표시를 하고 ▶오유 등 사이트에 사회·정치 이슈 관련 글 120여 개를 작성한 것 등이다. 민주당 등 야권은 김씨의 이런 활동이 “명백한 대선 개입 행위”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국정원 측과 김씨는 “개인 의사를 밝힌 것이거나 정상적인 대북심리전 활동”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자신의 ID로 인터넷 게시물을 열람한 혐의(개인정보보호법 위반)로 언론사 기자 등을 고소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김씨가 오유 등에서 만든 16개의 아이디 가운데 5개를 다른 사람과 공동으로 사용해 온 정황이 이날 추가로 확인됐다.

 그러자 야당 등은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이 확인된 것”이라고 공세를 강화했다. 하지만 국정원 관계자는 “A씨는 국정원 직원이 아니며, 그가 김씨의 방첩 활동에 협조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경찰은 김씨가 인터넷 사이트에 남긴 글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 의견으로 볼 것인지에 대해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한 경찰 고위 관계자는 “댓글 내용 등을 볼 때 선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가 있어 보인다”며 “국정원의 정상적인 업무 범위에 들어가는지 여부는 향후 법원의 판단을 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고려대 북한학과 유호열 교수는 “상식적인 수준에서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으로 보기 힘든 상황에서 유죄를 전제로 접근해선 안 된다”며 “국정원의 대북 심리전이 위축되지 않는 방향으로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를 조만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뒤 수사 종결 여부를 판단키로 했다.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김씨의 인터넷상 활동이 대선 관련 정치 행위인지, 정상적인 국정원 업무인지에 대한 법리 검토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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