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용병들 동작 그만" 이규섭 오랏줄 수비

중앙일보

입력

프로농구 삼성 썬더스의 김동광 감독은 지난 28일 SBS 스타즈와의 안양경기에서 1점차로 패한 뒤 기분이 상한 가운데서도 이규섭에 대한 질문을 받자 칭찬부터 늘어놨다. 그러는 동안 안색이 평온해졌고 나중엔 웃음기마저 머금었다.

김감독은 "외국인 선수를 제대로 수비할 수 있는 국내 선수가 몇이나 되느냐"고 물었다. LG 세이커스의 새내기 송영진이 여러 면에서 이선수와 비교되지만 현재 기량만으로 따지면 '하늘과 땅 차이'라고 강조했다.

이선수가 상대팀의 외국인 선수 1명을 막는 동안 힘을 비축한 아티머스 맥클래리가 공격에서 힘을 몰아 쓰고 여기서 탄력을 얻어 우지원·주희정·무스타파 호프가 능력 이상의 경기력을 발휘한다. 이것이 '이규섭 효과'의 본모습이다.

이규섭 효과의 이면에는 '확률=골밑'을 강조하는 김감독의 소신과 이선수의 팀플레이를 위한 희생이 숨어 있다. 이선수는 썬더스에서 주로 골밑을 수비하며 공격할 기회는 가장 적다. 공헌도가 높기는 해도 빛이 나지 않는 임무를 주로 맡는다.

문경은을 SK 빅스에 내주고 영입한 우지원을 위한 패턴 플레이는 있어도 이선수를 위한 패턴은 썬더스에 없다. 궂은 일만 골라서 하는데 김감독은 젊디 젊은 신세대 포워드를 위해 한번도 '튈' 기회를 주지 않는다.

김감독은 말한다. "가장 어려운 수비 상대를 골라 맡기는 선수는 팀에서 가장 중요한 선수라는 뜻이다. 이규섭에게 매 경기 돋보일 기회를 주고 있다."

프로농구에서 외국인 선수를 가장 잘 수비한 선수로 기아 엔터프라이즈(현 모비스 오토몬스)의 이훈재(여자프로농구 금호생명 코치)가 꼽힌다. 챔피언전 파트너였던 나래 블루버드(현 삼보 엑써스)의 '득점 기계' 칼 레이 해리스를 철저히 봉쇄했다.

이훈재의 수비력은 엔터프라이즈를 원년 챔피언에 올렸다.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 후보에도 이름을 올릴 만큼 그의 높은 공헌도는 모두의 인정을 받았다. 이규섭에게는 아직 명예로운 '작위'가 없다.

이날 경기 후 인터뷰를 요청받은 이선수는 거북해 했다. "졌는데요,뭘."

진 팀 선수는 인터뷰할 자격조차 없다는 프로 2년생 포워드의 얼굴에 새내기의 상큼함은 사라졌고 성숙한 투혼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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