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는 영원한 문학 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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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티야나 톨스타야(사진).

생소한 이름이다. 하지만 러시아에선 이름있는 소설가이자 에세이 작가다. 성이 좀 낯익지 않은가. 러시아어로는 같은 성이라도 남성형과 여성형이 따로 있는데 톨스타야는 톨스토이의 여성형이다.

그렇다. 그는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와 한 집안이다. 톨스토이의 직계 자손은 아니고 증손녀뻘이다. 올해 51세. 그의 할아버지 세르게이는 '이반뇌제'로 스탈린상을 받은 소련의 유명작가였다.

그가 1998년에 완성한 소설 '슬링크스'와 에세이집 '푸슈킨의 아이들:러시아와 러시아인에 대한 글쓰기'가 미국의 휴튼미플린 출판사에서 영어로 번역돼 이달 하순 선보인다고 뉴욕 타임스가 최근 보도했다.

소련에서 문학계보학 교수를 하던 그는 1986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98년까지 프린스턴.스키드모어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했다. 그러면서 러시아의 정치.문학에 관한 유머와 통찰력이 넘치는 장문의 글을 뉴욕 타임스 서평란에 오랫동안 기고했다. '푸슈킨의 아이들'은 이를 모은 것이다.

그러다 98년 돌연 귀국했다. 톨스토이 가계의 일원이자 러시아 문학의 계보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그리고 작가로서 미국에 더 머물 경우 모국어에 대한 감각을 잃을 우려가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모스크바에 돌아오자마자 한 일은 86년 중단했던 소설 '슬링크스'의 마무리 작업이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공식 판매부수가 무려 20만부에 이르는 성공을 거뒀다. 실제 판매부수는 그 두 배를 넘는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톨스타야의 처음이자, 아직까지는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위협적인 신화 속 인물 슬링크스와 돌연변이 집단을 다룬 이 소설은 팬터지적 설정과 넘치는 은유로 러시아 문화의 기원를 파헤쳤으며,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받았다.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현 대통령을 닮은 등장인물 때문에 더욱 화제를 모았다. 러시아 혁명과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 설정도 주목거리였다. 톨스타냐는 "역사의 반복성을 다뤘다"고 말했다.

미 하버드대의 슬라브문학 교수인 스베틀라나 보임은 "톨스타야는 말을 맛있게 만드는 재주가 있으며 언어를 자유자재로 다룬다"고 평했다. 보임 교수는 "문제는 독자들이 그를 있는 대로 평가하지 않고 톨스타야라는 성을 보고 점수를 더 후하게 주는 데 있다"고 말했다.

작가는 텔레비전 쇼의 진행자로도 이름을 날리고 있다. '스캔들 학교'라는 프로그램이다. 인기있는 정치인.배우.방송인 등을 불러 인터뷰를 하고 내보낸 후 두 진행자가 그를 비난하는 형식이다. 비윤리적이라는 비난도 있다. 하지만 톨스타야는 "인물비평의 한 방식일 뿐"이라고 일축한다.

톨스타야는 여타 러시아 지식인들과 달리 푸틴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혼란한 나라의 질서를 바로잡았다고 높이 평가해서다. 그렇다고 권력의 편에 선 것은 아니다. 국영방송에 출연해 당국의 검열정책을 혹독하게 비난하는 등 사회 비리에는 목소리를 높인다.

"나는 러시아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으며, 아직 생각을 말하기에 충분한 에너지가 있다."

작가가 최근 뉴욕 타임스와 인터뷰할 때 강조한 말이다.

러시아인들이 지식인과 작가를 '비공식 정부'라고 부르며 존경하는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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