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3. 끝없는 편력 <11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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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갑자기 며칠 만에 담배를 피우니까 감방 용어대로 현기증이 나면서 '홍콩'가는 기분이 되었다. 나도 그에게 어떻게 들어왔느냐고 묻게 되었다.

-십장이 전표 장난 하길래 몇 대 쥐어 팼지.

그는 당시에 한창 시작되고 있던 제2한강교 공사장에서 일하던 일용노동자였다. 그때의 관급 공사판은 거의가 '와이로'를 써서 명색뿐인 입찰로 이권을 따낸 하청이었는데 일제시대의 노가다판 구조 그대로였다. 나중에 칠십 년대에 광산 취재를 하면서도 똑같은 꼴을 보게 된다. 그는 그런 우울한 얘기는 한달음에 끝내버리고 연이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얘기를 꺼냈다. 그는 해병대 중사로 제대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실은 갈매기(계급장) 세 마리에 지나지 않았는데 공사판에서 그가 의기도 있고 아는 게 많다고 동료 인부들이 진급을 시켜줘서 '대위'로 만들어 버렸다. 전국의 공사판은 당시만 해도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뻔해서 십장이나 기술자들은 서로가 알음알이로 이름을 대면 대번에 파악이 되었다. 대위는 일손이 시원시원하고 함바집의 신용이 쌓여서 모두들 고참 일꾼으로 알아주었다. 나이는 서른 셋, 어깨가 딱 벌어진 건장한 체격이었지만 키가 커서 오히려 말라 보였다. 곱슬머리에 불그레하게 그을린 얼굴이며 턱 밑에 아무렇게나 자란 수염에 씨익 웃는 얼굴이 말 타고 먼 길을 달려온 서부영화의 '버트 랭커스터'처럼 보였다.

대위 장씨와 나는 잡범이나 경범자들이 들고 나고 하는 유치장의 이십여 일을 함께 나란히 누워 자고 집에서 큰 형님이 들여준 사식비로 '벤또' 밥도 나누어 먹는 동안에 형제처럼 정이 들게 되었다. 그와 나는 밤에 잠이 오지 않으면 엎드려서 여러 가지 세상살이 얘기를 나누었다.

물론 그에게는 부모 형제와 처자식이 있었다. 대위는 그맘때 대부분의 자작농이 그러했듯이 겨우 굶주림이나 면할 정도의 땅마지기를 가진 소지주였다. 그러니 중학교 간신히 나온 뒤에 집에서 농사일을 거들다가 직업군인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형이 장가를 들게 될 것이고 누이동생은 미장원에 취직을 했다니까 자신도 식구들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고 했다. 군대 가면 입혀주고 먹여주고 최소한의 기술이라도 배울 수 있었으니까. 해병대가 군기가 좀 세다고는 하지만 '기면 기고 아니면 절대로 아닌' 그의 성격에도 맞는 편이었다.

-내친김에 정말 상사, 준위, 대위까지 가보지 그랬수?

내가 그렇게 말하니까 그는 시무룩해져서 잠시 말이 없더니 감방 창살을 연신 발로 차며 외쳤다.

-근무자, 여기 좀 봅시다.

잠에 취한 듯한 얼굴로 감실감실한 눈꺼풀을 비비면서 순경이 다가왔다.

-근무자 좋아하네, 씨팔.

-어 난 또 누구라구. 우리 부처님 같은 박 순경님 아니신가….

-알랑방구 뀌지 말구 빨리 말해, 원하는 게 뭐야, 씨팔.

-응, 그 내 소지품 중에 지갑하구 담배… 불 붙여서 한 대만 주라.

그림=민정기
글씨=여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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