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중국 경제 대장정] 16.담배·화훼 산업의 메카-쿤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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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서남부의 윈난(雲南)성은 본래 오랑캐의 땅이었다. 제갈량에게 맞서다가 일곱번이나 패한 뒤 부하가 됐다는 '칠종칠금(七縱七擒)'의 주인공 맹획(孟獲)이 위난성 출신으론 중국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다.

청(淸)나라 개국직후 평서왕(平西王) 오삼계(吳三桂)가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 난을 일으킨 뒤 윈난은 반역의 땅으로 낙인찍혀 청왕조 내내 천대받았다. 오랜 역사의 아픔을 딛고 사철이 봄날씨라 '상춘(常春)의 도시'로 불리는 쿤밍(昆明)을 중심으로 윈난성은 지금 중국 담배.화훼산업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9월 하순 중국 3대 담배회사 중 하나인 윈난성 쿤밍권련청 생산공장의 3층에선 공장 안내원과 취재팀 간에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6층서부터 걸어 내려온 취재팀에게 안내원은 굳이 3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라며 2.3층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했다. 윗층과 다를 게 없다며.

그러나 2.3층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한국의 첫 민간담배인 '이프(if)'를 이 공장에 위탁생산하고 있는 구강물산의 김인재회장은 "2.3층엔 이 공장의 최첨단 설비가 들어가 있어 외부에 공개를 꺼린다"며 "생산을 맡긴 우리에게도 딱 한번밖에 내부를 보여주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처음 이 공장을 보고 허름한 겉모습에 실망했던 구강물산측 관계자들도 생산설비를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고 한다. 金회장은 "공장 안에는 독일.이탈리아.영국 등에서 수입해온 최첨단 설비가 쫙 깔려 있다"며 "생산라인도 컴퓨터로 제어해 사람을 구경할 수 없었다"고 감탄했다.

한국 담배생산량의 절반인 연간 5백억개비의 담배를 만들어 내지만 국영기업 특유의 비효율과 낮은 수익으로 고민하던 이 회사가 크게 달라진 것은 올해 39세인 우이(武恰)부청장이 부임하면서부터.

1998년 시정부는 윈난성 최대 공기업인 쿤민권련청의 고질병을 고치기 위해 武부청장을 전격 스카웃했다. 나이는 젊지만 정부 연초전매국 담배평가위원회 멤버였던 武부청장은 담배에 관한 한 최고 권위자로 꼽혀왔다.

武는 부임하자 공기업 특유의 '철밥통'부터 손질했다. 98년 전 직원의 50%가 넘던 40세 이상 직원을 차츰 줄여, 지금은 5천여명의 직원중 71%가 40세이하로 젊어졌다. 일괄 감원 대신 다른 일자리를 알선해주는 방식을 택해 반발을 줄였다.

주저하던 회사간부와 성정부를 설득해 낙후한 설비를 최신 설비로 바꾼 것도 武부청장이다. 그의 노력 덕분에 책임질 일을 꺼려 '되는 일도 없고, 안되는 일도 없었던' 회사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담배 생산량뿐 아니라 품질에서도 중국 1위에 올라서게 됐다.

이프 담배를 위탁생산키로 한 것도 그의 결단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공장의 최신식 생산설비는 한 라인에 1천억원이나 하는 고가 장비다.

이런 장비를 자본금 3억원밖에 안되는 한국의 벤처기업에 빌려준다는 것은 웬만한 배짱으론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더욱이 구강물산은 한국의 담배인삼공사에 찾아갔다가 퇴짜를 맞고 온 터였다.

그러나 구강물산의 기술력을 한 눈에 알아본 그는 두말없이 위탁 생산을 결정했고 이프가 한국에서 1년도 안돼 1천만개비 판매 기록을 세우면서 이 회사는 일약 중국의 담배 수출 1위 기업으로 떠올랐다.

武부청장은 "이프 담배의 성공은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중국의 원재료.설비가 만나면 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겨냥한 상품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한 사례"라며 "구강물산과 손잡고 담배 수출에 적극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사계절 봄인 기후와 최첨단 설비,여기에 정부가 밀어주는 '영파워'까지 겸비한 것은 화훼산업도 마찬가지다.

90년 2백40무(畝.약 4만8천평)에 불과했던 윈난성의 화훼 재배면적은 지난해 6만2천무(1천2백40만평)로 10년 사이 30배로 늘었다. 윈난성이 생산하는 '꽃꽂이용 꽃(切花)'은 중국 전체의 50%를 차지하고 있다.

윈난성의 이같은 '화훼산업 혁명'은 화훼산업연합회 리캉(李鋼.36)비서장이 주도했다. 그는 남들이 생각치 않을때 윈난성에서 중국 최초의 국제원예박람회를 열었다.

99년 쿤밍세계원예박람회는 그때까지 천혜의 기후에도 불구하고 광둥(廣東).푸젠(福建)성이나 하이난다오(海南島)에 밀렸던 윈난성을 단숨에 중국 화훼산업의 중심지로 떠오르게 했다. 화훼산업회 관계자는 "이 행사를 계기로 유럽.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다른 곳에 앞서 쿤밍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쿤밍시는 내친 김에 시 외곽의 더우난(斗南)에 초대형 화훼경매시장을 만들고 있다. 네덜란드와 손잡고 2만7천평의 부지 위에 최첨단 경매설비를 갖춰 쿤밍을 '아시아의 암스테르담'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95년 이곳에 진출한 금호화훼유한공사 신정업(辛正業)부사장은 "쿤밍의 담배.화훼산업의 발전속도는 하루가 다를 정도"라며 "중국이 한국의 화훼산업기술을 따라잡는 것은 시간문제인 만큼 한국도 시장을 보호하는 데만 급급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중국에 진출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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