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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인준 청문회의 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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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교수
전 주한미국대사

미국 헌법 제2조는 고위 공직자 지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권한 행사에는 상원의 조언과 동의가 필요하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마 미 헌법이 제정된 225년 전에는 아무도 상원 검증이 필요한 공직자가 1400명까지 되거나 완료에 종종 몇 년씩 걸리는 힘든 인준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곤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상원 검증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상원은 기껏해야 주 유엔대사인 수전 라이스를 힐러리 클린턴 후임으로 국무장관에 임명하려는 시도를 좌절시킨다든지, 전 상원의원 척 헤이글의 차기 국방장관 임명에 반대하는 게 고작이다. 지명된 공직자는 대부분 만장일치의 동의를 얻어 상원을 통과하는 것이 전통이었다. 이런 경우 통상 청문회 당일에 지명 투표가 이뤄진다. 하지만 요즘 이런 신속한 처리는 갈수록 드물어지고 있다. 상원의원은 지명자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을 포함해 어떠한 이유로도 지명을 보류할 수 있다. 또는 어떤 성과와 맞바꾸기 위해 지명을 보류하는 일도 더욱 잦아지고 있다.

 오늘날 공직 지명자에 대한 상원 인준 청문회는 몇 시간에 걸쳐 과거 거주지 기록, 세금환급 기록, 가족들의 선거운동 기여 여부, 가사나 정원손질을 위한 도우미 고용, 그리고 이런 고용이 합법적인지, 세금 지원을 받는 정부 관사에서 이뤄진 것인지 등에 대한 질의·응답으로 이뤄진다. 검증은 심지어 10대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이런 과정은 상원의원이 조사한 내용을 지명자가 인정할 때까지 계속된다.

 내 경우 상원은 같은 내용을 다섯 차례나 확인했다. 끝없는 서류, 길고 긴 질문 목록, 그리고 배경 조사는 물론 정보조사원과의 인터뷰까지 이뤄졌다. “마리화나를 재배하다 체포된 적이 있는가”라는 황당한 질문부터 “마약을 소지하고 있나”라는 직설적인 질문까지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술을 마시다 체포된 적이 있나”라는 질문 등으로 과거 행동이나 태도를 캐기도 했다. 이런 경우 “기억나지 않는다”는 좋은 대답이 아닌 것 같다.

 인사 인준안이 상원에 회부되면 진짜 우스운 일이 벌어진다. 어떤 상원의원은 성명을 내기도 한다. 보통 “훌륭한 후보…” 또는 “나는 …을 우려한다”로 시작한다. 후자의 경우 지명자는 상원의원들을 만나 오해를 풀기 위해 노력한다. 불행히도 풀 수 있는 오해란 없다. 상원의원들의 반대 이유는 사실 어떤 일과 관련해 행정부에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거나 지명자의 과거 발언이나 행동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수많은 비정부기구도 공공 기록을 뒤져 지명자의 과거 그릇된 발언을 분석한다. 그 해석은 때로 부적절한 경우도 있다. 내가 이라크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됐을 때 한 신문은 내가 북한의 인권 기록이 미국과 비교해 더 나은 것처럼 말해 북한에 동정적이거나 정신 나간 사람임을 보여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내가 했던 실제 발언은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인권기록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심지어 미국도 그렇다. 하지만 북한은 아마 세상에서 최악일 것이다”였다.

 지명자의 지지자들도 나선다. 회의적인 상원의원은 지명자 지지자들의 전화 공세를 받을 수 있으며 상원 지도자들의 압력을 받기도 한다. 지명자의 반대편에서도 비슷한 일을 벌이기도 한다.

 때로 뭔가를 요구하거나 정치자금 기부자를 늘리기 위해 지명에 반대하기도 한다. 이들이 원하는 걸 얻거나 모금이 완료되면 지명자는 행복한 전화를 받게 된다. “됐습니다. 인준은 오늘 오후 이뤄질 겁니다. 표결이 끝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축하합니다.” 지명자는 전화기를 놓고 이렇게 말하게 된다. “내가 뭘 생각하고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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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교수 전 주한미국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