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중국 경제 대장정] 국영기업 틈서 성공한 '중선오토바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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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에선 중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인력거'가 없다. 대신 가파른 길을 쉽게 다닐 수 있는 오토바이가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다. 충칭에 뿌리를 둔 중선(宗申)오토바이가 중국 5대 오토바이 생산업체 중 하나로 성장한 것도 이런 탄탄한 수요기반이 있어서다.

창립자 주어종센(左宗申)회장은 오토바이 수리공 출신이다. 左회장은 문화대혁명 초기였던 1967년 인재를 농촌으로 보낸다는 '상산하향(上山下鄕)'정책에 따라 충칭에 있는 작은 컵공장에 배치됐다. 워낙 손재주가 뛰어나고 기계에 관심이 많았던 左회장은 오토바이가 많았던 이 공장에서 컵 만드는 기술은 제쳐 두고 오토바이 수리에만 매달렸다.

문혁이 끝나자 左회장은 그간 익힌 기술로 오토바이 수리점을 차렸다. 그러다 오토바이 엔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에 착안해 92년 그동안 모은 전 재산 50만위안(8천만원)으로 엔진공장을 설립했다. 처음엔 중고 엔진을 사다가 수리해 팔다가 기술에 자신이 붙자 기술개발에 나섰다. 96년 드디어 오토바이 엔진을 독자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때마침 97년 충칭이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오토바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덕택에 5년만에 중선은 오토바이 엔진부문에서 중국 내 1.2위를 다툴 정도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중선의 초고속 성장에는 남다른 비결이 있었다. 대형 국영 오토바이 회사만 8곳이나 되는 충칭에서 살아남기 위해 중선은 발빠른 디자인으로 승부했다. 남들이 구식 모델만 팔고 있을때 초 현대적 감각으로 무장한 오토바이로 소비자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마침 국영기업 개혁을 놓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충칭정부가 중선의 성공사례를 좋은 본보기로 꼽은 것도 당연했다. 左회장은 충칭의 TV프로그램에 단골 출연자가 돼 기업의 경쟁력 강화 방안을 강의해야 했다.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출근하는 그의 하루 일과 모습은 CD로 제작돼 국영기업에 배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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