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리포트] 풀리는 그린벨트

중앙일보

입력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묶여 있던 전국의 주요 알짜 땅들이 개발 가능지역으로 하나 둘씩 명패를 바꿔달고 있다. 그린벨트 자체를 완전히 없애기로 한 7개 중소도시권 중 제주도는 개발이 거의 자유로운 도시가 됐고 나머지도 해제 절차를 밟는 중이다.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광역도시권의 우선해제 대상인 대규모 집단취락 중에도 과천시 문원동 등 31개 마을은 해제의 축포를 터뜨렸다. 30년 가까이 엄동설한에 떨었던 이들 지역에는 이제 따스한 봄기운이 돌고 있다.

물론 당장은 일반 택지처럼 마음대로 집을 지을 수 없도록 자연녹지라는 철조망을 쳐놓았지만 앞으로 개발의 지침서라고 할 수 있는 지구단위계획만 만들어지면 건축이 한결 쉬워진다.

별 쓸모 없었던 땅이 하루 아침에 개발용지로 팔자가 바뀌게 되면 당연히 땅값도 오르게 마련이다. 이런 돈 되는 곳으로 투자자들이 몰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게다.

사실 투자자들이 노리는 곳은 개발 수요가 많은 집단취락 주변 땅이다. 취락지역은 이미 땅값이 오를 대로 올라 먹을 게 별로 없지만 빈 땅으로 남아있는 주변지역은 일단 그린벨트에서 풀리기만 하면 엄청난 시세차익을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 근교의 그린벨트 내 주택용지의 값이 대략 평당 2백만~3백만원 선인데 반해 농지 등은 40만~50만원 정도 밖에 안되니 땅의 팔자만 바뀌면 당장 5~6배의 시세차익을 남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이만한 투자상품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해제지역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있어 땅투기가 쉽지 않다고 건설교통부 관계자는 말하지만 부동산중개업자들의 얘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쪽이다.

어떻게 이런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알 만한 사람은 다 정부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건교부가 지난 9월 7개 대도시권 개발제한구역 조정안을 만들면서 해제대상을 당초 3백호에서 20호 이상으로 크게 늘리고 해제절차도 대폭 완화한 것이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이번의 완화조치로 법적 제재를 받아야 할 투기목적의 외지인 소유 토지나 무허가 용도변경 건물부지가 대량 금싸라기땅으로 팔자가 바뀌게 되었다.

건교부는 여기다가 국책사업이나 지역 현안사업은 환경보전가치가 높은 곳에도 얼마든지 들어설 수 있도록 했다. 이런 마당에 난개발 방지 명목으로 누굴 훈계하고 지도할 수 있겠는가.

사정이 이러니 앞으로 그린벨트 해제지역에는 온갖 개발사업이 남발할 게 뻔하다.

물론 건교부는 해제지역의 관리방안을 마련했지만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지방자치단체장이 사업 승인권을 갖고 있어 과연 국토가 제대로 보전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전문가들이 지금이라도 건물 높이에서부터 배치.모양.색깔 등 세세한 부분까지 엄격하게 규제하는 새로운 해제지역 개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리라.

최영진 전문위원 yjcho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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