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기업 규제완화 한걸음만 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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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간에 재벌제도 개선에 관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규제 강도와 범위에 관해 한동안 이견을 보여온 재정경제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합의한 것으로 알려진 이번 정부안은 규제 일변도의 현행 제도에 비하면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안에 따르면, 우선 자산규모 상위 30대 대기업집단을 규제대상으로 삼던 것을 자산규모 5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으로 규제기준을 바꿨다. 자산규모를 규제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문제는 남아있지만 그 대상이 17개로 줄어든다는 점은 일단 긍정적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자산규모 2조원 이상인 모든 대기업집단을 상호출자나 채무보증을 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그 규제대상이 38개로 늘어난다는 점,또 순자산의 25%를 넘는 출자분에 대해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주주의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안은 또 일단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면 무조건 출자총액에 관해 제한받던 것을,부채비율이 1백% 미만으로 재무구조가 건실한 기업집단은 그 규제에서 빼주기로 했다.

뿐만 아니라 핵심역량 업종.구조조정 기업에 대한 출자는 제한을 두지 않기로 한 것도 출자총액에 묶여 있던 투자를 활성화하는 데 일조할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듯 정부의 대기업집단 제도 개편안은 일부 규제를 풀면서도 새로운 제한을 두거나, 규제적용의 예외를 인정하면서도 그 최종판단은 정부의 손 안에 두고 있다. 경제의 글로벌화와 투자위축 등 규제완화를 요구하고 있는 여건과, 규제완화가 가져올 수 있는 경제력 집중과 부실의 위험 사이에서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한마디로 정부안은 정부 내에 우리 기업의 투명경영과 자율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불신이 여전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남기고 있다. 기업의 경쟁력강화와 경영개선은 정부 아닌 경영진과 주주.채권단 등 이해관계자의 몫이다.

아직 여야간의 정책협의가 남아있다. 이 과정에서 미진한 점을 보완해 한 걸음 더 규제완화 쪽으로 결과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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