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군의 한·일 만화보기] '춘향전' 리메이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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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고전 중 만화로 만들면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은 무엇일까요. 한.일의 만화가들은 『춘향전』에서 그런 매력을 발견하는 모양입니다.

『성전』 『X』 등으로 일본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여성 만화창작집단 클램프(CLAMP) 는 1996년에 『신 춘향전』을, 『아일랜드』 등으로 일본의 메이저 만화잡지까지 진출한 양경일.윤인완씨는 지난해 『신 암행어사』를 각각 선보이고 있으니 말입니다.


재미난 점은 두 작품 모두 『춘향전』을 재해석하고 있지만, 그 모티브가 되는 것은 춘향이의 정절이 아니라 암행어사의 무용담이라는 것이지요.

장르 역시 무용담을 담아내기 좋은 팬터지입니다.'마패'라는 절대적인 힘을 자유자재로 행사하며 거침없이 악을 응징하는 암행어사. 그가 주는 카타르시스는 국경을 초월한 한국 고전의 인기를 설명해줍니다.

『신 암행어사』는 쥬신국(國) 의 비밀 감찰요원인 암행어사 문슈(문수가 아닙니다) 가 마패의 힘인 '팬텀 솔저'를 이용해 악을 응징하는 내용입니다.

그렇다고 문슈가 전형적인 '정의의 사도'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구원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암행어사는 마법의 램프가 아니야. 소원은 스스로 성취하는 거다"라며 야멸찬 모습을 보이기까지 하지요. 전형에서 살짝 벗어나 정의와 불의의 중간쯤에 서 있는 문슈의 캐릭터가 신세대 독자들에겐 더 호소력을 지니나 봅니다.

『신 춘향전』의 암행어사 몽룡은 양반의 수청 요구를 피해 목숨을 버린 엄마의 한을 풀겠다고 복수에 나선 춘향을 도와주는 역할입니다. 이 작품이 주목하는 바는 "양반이 그렇게 대단하냐 ! 양반도 사람이야. 똑같은 피가 흐르는 사람일 뿐이라구"라는 춘향의 대사에 압축돼 있습니다.

이 작품은 원전에서 춘향과 몽룡의 사랑 이야기, 즉 멜로적 요소보다 신분 제도를 거부하는 춘향의 저항적 이미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점이 특히 눈에 띕니다.

막부(幕府) 로 대표되는 '절대 권력'에 대한 순종으로 일관된 일본의 역사관으로는,변사또의 수청을 거절하는 원전 속 춘향의 모습이 색다르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우리가 흔히 고리타분하다고 치부하는 고전 소설을 이렇게 맛깔나게 요리해내는 두 만화를 보면 소재 탓만 하는 건 핑계가 아닐까 하는 반성도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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